시가 가진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찬 북부종합사회복지관
- "비명 대신 향기를 지르는 풀들처럼"… 시로 전하는 위로와 치유의 현장 - 무대 매너를 몸에 익히는 시간, 1%의 완성도를 향한 발걸음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짙어가던 5일, 청주 북부종합사회복지관(관장 허성희) 2층 교육실의 문을 열자마자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시(詩)의 선율이 흘러넘쳤다.
대전시낭송예술인협회 회장이자 변규리 시낭송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는 변규리 원장의 다정한 목소리가 수강생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변 원장은 이날 강단에서 시낭송의 본질을 “세상의 하찮아 보이는 것들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녀의 말처럼, 교육실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소박하고도 위대한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변 원장의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코칭에 수강생들 사이에 정겨운 웃음이 터졌다. 무대에 반듯하게 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반듯하게 전달하고,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이 인사하고 들어가는 것. 변 원장은 이것이 시낭송의 기본이자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수준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코칭할 부분이 많아진다는 그녀의 설명에는 깊은 교육 철학이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열 가지를 말하면 다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다섯 가지가 흡수되면 다음 단계를 열어주는 맞춤형 눈높이 교육이다.
특히 변 원장은 같은 시라도 낭송하는 사람의 음색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깔로 채색된다는 점을 짚어주었다.
"어떤 분이 '토닥토닥'을 읊으면 맑은 스카이 블루(하늘색)인데, 다른 분이 하면 따뜻한 핑크빛이 돼요. 시낭송에는 정답이 없어요. 자기의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 시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기술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수강생들은 3~4개월 동안 서로의 음성을 파악하며 자신만의 '애송시'를 찾아가는 여정에 한껏 설레는 표정이었다.
이어진 스피치와 낭송 훈련 시간은 수강생들의 진솔한 인생 고백으로 채워졌다. 마이크를 잡은 수강생들은 한 주간 있었던 감사의 조건들을 2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차분히 풀어냈다.
최근 설악산 무박 종주를 다녀왔다는 한 수강생은 밤마다 시를 한 편씩 읽으며 행복을 느낀다며, 김재진 시인의 '토닥토닥'을 낭송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주민센터에 가서 기초연금을 신청했다가 직원이 자신을 '어르신'이라 부른 일화를 소개해 큰 공감을 자아냈다.
처음에는 그 호칭이 낯설고 적응되지 않아 딸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딸이 소설 내용을 빌려 "세월이 지나 깨달음을 얻은 분을 어르신이라 부른다. 엄마 멋있다"라며 위로해 주었다는 가슴 찡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낭송한 나태주 시인의 '선물'은 딸을 향한,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었다.
"나이 드는 것과 60을 넘긴 새내기 노인이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수강생은 김춘수 시인의 '꽃'을 통해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고, 몸은 아프지만 사진과 기사로 소통하며 나태주의 '안부'를 건넨 수강생의 고백은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변 원장은 6월을 맞아 수강생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시가 있다며 오광수 시인의 '6월을 드립니다'를 직접 낭독했다.
변 원장의 목소리를 타고 전달된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서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축원의 메시지는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피워냈다.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이날 새로 배우게 된 김재진 시인의 시 '풀'이었다. 변 원장은 최근 구청에서 풀을 벤 길을 걷다가 진하게 풍겨온 풀 비린내에서 시의 영감을 받았다며 수강생들과 시를 나눴다.
시 구절을 나지막이 읊조리는 변 원장의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살아가며 입은 저마다의 상처를 비명 대신 향기로 승화시키는 풀들의 초연함은,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온 복지관 수강생들의 삶과 닮아 있었다.
수강생들은 차례로 무대에 나와 '토닥토닥'과 '풀'을 연이어 낭송했다. 처음에는 서툴고 떨리던 목소리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단단해지고 깊은 감정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변 원장의 원포인트 레슨이 더해질 때마다 수강생들의 시 속에는 초록빛 상처가 뿜어내는 진한 향기가 묻어났다.
변규리 원장은 "인생의 연륜이 깊은 선생님들이 모인 이곳은 참으로 청주는 교육의 도시 같다"라며 "연세가 있으신 만큼 내면에 품은 생각과 깊이가 엄청나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 함께 성장하는 귀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시의 마법을 배우는 곳.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의 시낭송 교실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학원이 아니었다.
서로의 아픔을 토닥이고, 지나온 삶의 궤적을 존중하며, 하찮은 풀 한 포기에서도 인생의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진정한 '치유와 인문학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채워갈 다음 주 금요일의 온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