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선 칼럼] 인사가 만사(人事萬事)

2026-06-18     유규상 기자

[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이제 선거가 끝났고, 정치의 시간이 아니라 인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흔히 "인사가 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그러나 이 말에는 생각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인사가 만사"는 사람을 잘 쓰는 것이 모든 일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동아시아 정치사에서 훌륭한 군주와 행정가의 조건은 뛰어난 정책을 만드는 능력보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으로 평가되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예산이 있어도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잘못되면 정책은 실패하고, 반대로 완벽하지 않은 제도라도 적합한 사람이 맡으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경험적 지혜가 담겨 있다.

중국 고전에서는 "정치는 사람을 얻는 데 있다(政在得人)"고 했고, 조선시대에도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일을 국정 운영의 핵심으로 보았다. 결국 인사는 단순한 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 이후의 인사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공공 영역은 선출직과 임명직, 그리고 공채와 특채를 통해 선발되는 공무원 체계로 구성된다. 어느 위치에 있든 이들은 공공성과 공익이라는 원칙 아래 국가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정책기획, 예산기획, 사업기획을 담당하는 위치의 사람들은 직급의 높고 낮음을 떠나 국민의 삶과 사회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화예술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이사, 이사장, 상임·비상임이사뿐 아니라 감사, 자문위원, 심사위원, 추천위원, 각종 심의위원회 위원들은 공공 예산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이들의 인사는 단순한 개인의 경력 문제가 아니라 문화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특정 인사에 대한 찬반 논란과 함께 보이콧이나 성명서 발표가 반복되고 있다. 물론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 진영의 사람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 혹은 정치적 성향만으로 정책 역량을 판단하는 태도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정책은 특정 장르나 특정 집단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예술, 관광, 콘텐츠, 지역문화, 문화산업, 문화유산 등 다양한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화와 예술, 관광과 산업, 지역과 세계를 가로막고 있는 칸막이를 걷어내는 일이다.

문화예술계가 늘 강조해 온 가치 역시 다양성이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세대, 다양한 지역,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사에 있어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인정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또 다른 배제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진영의 사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이해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조정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단순한 업무능력만이 아니다. 업무능력은 기본이다. 비전도 중요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리더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공공성을 지켜내는 리더십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본질적으로 다양성의 생태계다. 그래서 문화예술 정책은 다양성을 말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가치와 관점을 연결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새로운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의 진짜 의미도 여기에 있다. 결국 좋은 인사란 내 편을 앉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함께 일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다. 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정치가 아니라 다양성을 품고 공공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인사의 철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