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가 국가를 버티던 시절, 을지는 현장에 있었다”
국가와 국민과 함께 걸어온 70년, 의료와 교육의 공공적 기록
[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을지재단은 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일상 곳곳에 남아 있던 1956년, 의료 인프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출발했다.
의료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고, 병원은 치료 공간을 넘어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최전선이었다.
을지재단의 70년은 바로 그 현장에서 시작돼 대한민국 근현대 의료의 흐름과 함께 이어져 왔다.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은 70주년을 맞은 지금을 “과거를 돌아보는 기념의 시간이 아니라, 의료와 교육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성찰해야 할 시점”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을지재단의 발자취는 외형적 성장의 기록이 아니라, 사회가 가장 절실할 때 의료가 어디에 있어야 했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해 온 과정”이라고 말했다.
■ 전쟁 폐허에서 시작해 국민 위한 의료로 대한민국을 잇다
을지재단이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1956년,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시절에 출발한 을지재단은 대한민국 근현대 의료사와 궤를 같이하며 성장해 왔다.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의료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던 시대였다. 을지재단의 시작은 한 기관의 설립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료의 버팀목을 세우는 일이었다.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은 “70주년은 단순한 기념의 숫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앞에서 의료와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다시 묻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을지재단의 역사는 병원의 확장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마다 의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 ‘병원’이 아니라 ‘의료 안전망’으로 자리하다
을지재단의 70년은 대형 의료기관의 성장사라기보다, 의료가 어떻게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에 가깝다.
수도권과 지역을 아우르는 병원 네트워크는 단순한 규모 확장이 아니라, 지역별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산하 병원들은 각 지역의 의료 환경과 수요에 맞춰 응급·중증·필수의료를 강화해 왔다.
특히 응급환자 이송 체계 구축과 중증 환자 치료 역량 확보는 지역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과제였다.
최근에는 병원 간 진료 정보를 연계하는 통합진료 시스템을 구축해 환자가 원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생활권 내 의료기관에서 재진과 사후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의료 접근성과 치료의 연속성을 동시에 높인 모델로, 환자 중심 의료의 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의료의 질뿐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삶까지 함께 고려한 구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위기의 순간마다 현장에 있었던 의료
을지재단의 의료는 평상시뿐 아니라 위기의 순간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다.
감염병 확산, 각종 재난과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은 늘 현장을 지켰다. 최근에는 육아휴직 중이던 간호사가 항공기 내에서 발생한 뇌전증 응급환자를 구조해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는 개인의 헌신을 넘어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조직 문화와 교육의 결과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의료진 개인의 선택 뒤에는, 의료를 사명으로 인식해 온 재단의 오랜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의료는 제도나 정책 이전에 사람으로 완성된다”며 “을지의 의료진들이 위기의 순간에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오랫동안 ‘의료는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한 책임’이라고 교육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의료를 지속시키는 힘, 교육에서 시작되다
을지재단의 또 다른 축은 교육이다. 재단은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사람을 키우는 일’ 역시 의료기관의 핵심 책무로 여겨왔다.
을지대학교는 의과대학, 간호대학, 보건과학대 등 보건 계열 교육을 통해 현장 중심의 의료 보건 인재를 양성해 왔으며, 이는 지역과 국가 의료를 떠받치는 기반이 됐다.
진료·교육·연구가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는 을지재단 의료 모델의 근간이다.
병원이 현재의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라면, 대학은 미래의 생명을 준비하는 공간이란 인식이다. 의료와 교육이 함께 작동할 때 의료가 지속 가능하다는 믿음이 지난 70년간 이어져 왔다.
■ ‘덕분에 70년, 함께 100년’이 담은 의미
을지재단은 을지대학교의료원 창립 70주년 슬로건으로 ‘덕분에 70년, 함께 100년’을 내걸었다. 이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을지가족은 물론 국민과 지역사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는 동시에, 앞으로의 의료는 더 이상 혼자 갈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초고령사회 진입, 지역 의료 격차, 필수의료 붕괴 우려, 감염병의 상시화 등 의료 환경은 점점 더 도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의료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을지재단은 다음 100년 역시 지역과 국민 곁에서 답을 찾겠다는 각오다.
박 회장은 “을지재단의 70년은 병원의 역사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어려울 때 의료와 교육으로 어떻게 응답해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라며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 앞에서 가장 먼저 고민하고, 가장 늦게 물러나는 의료기관의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출발한 작은 의료의 결심은, 어느덧 대한민국 의료의 한 축이 됐다. 지역과 국민 곁을 지켜온 70년. 을지재단의 의료는 오늘도 현장에 있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사랑 생명존중’이란 핵심 가치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