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청소년들이 기록한 6·25 참전용사의 숨은 눈물

- 남세종종합청소년센터 동아리 ‘세종 히스토리’ - “영웅이 아닌, 살아서 돌아가고 싶었던 소년들”. - 참전유공자 6인의 생생한 역사 기록전 개최

2026-06-28     최형순 기자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6·25전쟁 제76주년을 맞아 세종특별자치시 시청 로비에 아주 특별하고도 가슴 먹먹한 기록들이 펼쳐졌다.

세종특별자치시 남세종종합청소년센터가 교육발전특구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한 ‘청소년 나라사랑 프로젝트, 청소년 영웅의 꿈을 만나다’ 전시 현장이다.

이번 전시는 남세종종합청소년센터 소속 청소년 동아리 ‘세종 히스토리’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보훈 행사와 궤를 달리한다.

청소년들이 지역 내 6·25 참전유공자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삶과 전쟁의 기억을 인터뷰하고, 이를 청소년의 시선에서 텍스트와 영상, 전시물로 재구성해 냈다.

현장에서 마주한 참전용사 6인의 기록은 교과서 속 활자로만 접하던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현실이었는지, 그리고 그 안의 ‘인간’이 어떠한 희생을 치렀는지를 생생하게 웅변하고 있었다.

본 전시는 1차로 세종시청 1층 로비에서 오는 7월 3일까지 운영되며, 이어 2차 전시는 7월 4일부터 7월 18일까지 남세종종합청소년센터 1층에서 시민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전시의 첫 장을 장식한 윤한균 유공자(기록 청소년 김가은, 김은희)는 1950년 당시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해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꿈꾸던 16세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전쟁 발발 후 나라는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을 거쳐 원산, 북청, 풍산, 그리고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장으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

혹한 속에서 미군과 국군이 얼어 죽어가던 참상을 목격한 그는 흥남철수 당시 남겨진 피난민들에게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돌아가지 못한 미안함을 평생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은 그의 삶을 보며 “사람을 살리고 싶어 의사를 꿈꾸던 소년이, 살아남기 위해 먼저 적을 죽여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견뎌야 했다”고 기록했다.

이은찬 유공자(기록 청소년 김리아, 강민재)의 기록에는 “몸은 살아 있지만 정신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과 같았다”는 처절한 회상이 담겼다.

1950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참전한 그는 탱크 한 대 없이 소총만으로 북한군의 소련제 탱크와 포탄에 맞서야 했던 춘천 전투의 열악함을 생생히 증언했다.

낙동강 전선에서 파편이 목을 관통하는 중상을 입고 부산야전병원으로 후송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전선에 복귀한 후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5개월간 포로생활을 겪어야 했다.

매일 이어진 사상 교육과 굶주림, 공포 속에서 그는 다른 포로와 목숨을 걸고 인민군으로 편입되는 척하며 탈출에 성공했다.

김기창 유공자(기록 청소년 이은정, 한예지)는 6·25전쟁 당시 결혼한 지 겨우 두 달 된 새신랑이었던 그는 국가의 소집 명령에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한 채 전장으로 향했다.

1952년 최전방 노리지구 전투에 투입되어 밤낮없는 포탄과 중공군의 기습 속에 하루하루를 버텼다.

중대장 박종순 대위의 생일날 가해진 중공군의 기습으로 참호 속에 수류탄과 화염병이 쏟아져 동고동락하던 전우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으나, 그는 당시 통신 임무로 다른 위치에 있었기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는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나도 그 자리에서 함께 죽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태조 유공자 (기록 청소년 김서우, 김은희)는 바로 옆의 동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참혹함을 겪었다. "일선에서 직접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일념으로 현역 편입을 감행, 수도사단 26연대 소속으로 '수도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낮에는 척후조 임무로 중공군을 정찰하고, 밤에는 쏟아지는 포격 속에서 불발탄 덕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는 등 극한의 위기를 넘겼다.

철수 과정에서 왼쪽 어깨에 파편을 맞아 후송된 그는 인터뷰 내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며 청소년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당부했다.

유영복 유공자 (기록 청소년 김리아, 양도윤)는 이동 경로에서 동료들이 굶어 죽는 비극을 목격했다.

제주도 훈련소를 거쳐 백마부대에 배속된 후 ‘백마고지 및 철원 일대 전투’에 투입되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포탄이 떨어져 겨울에는 시신 사이에 흐르는 물을 마셔야 할 정도로 처참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포탄 파편 부상으로 미군 병원에서 치료 후 전역한 그는 "전쟁은 사람답게 살 수 없게 만드는 비극"이라며 후대 청소년들이 양심을 지키고 평화로운 세상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강태훈 유공자 (기록 청소년 김가은, 이은정)는 국군에게 매우 불리한 전장에서 중공군이 개미떼처럼 새까맣게 몰려오는 참혹한 전장을 공병으로서 지뢰 매설과 철조망 구축 임무를 수행하며 버텨냈다.

그는 기습 공격 속에서도 보병들과 직접 전투를 치러야 했으며, "작전을 마치고 저격능선에서 저녁밥을 먹으면 오늘 하루도 살아남았구나 생각했다"며 매일 죽음과 마주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전투 중 차량 전복으로 머리와 허리에 큰 부상을 입고 전역한 그는 전쟁 이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지역사회 봉사에 힘쓰며 살아왔고, 청소년들이 그 속의 희생과 헌신을 오래 기억해 주길 당부했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참전유공자들이 전쟁으로 인해 끝내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꿈을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영상과 이미지로 구현해 낸 코너다.

의사가 되어 청진기를 대고 있는 소년의 모습, 전쟁이 없었다면 누렸을 평범한 일상들이 스크린에 펼쳐지자 관람객들은 숙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외에도 청소년들이 정성스레 꾹꾹 눌러쓴 감사 편지, 실제 참전유공자들의 제복과 훈장 등도 함께 전시되어 감동을 더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수빈 남세종종합청소년센터 청소년지도사는 “과거 미국에서 참전용사들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문화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세종시 참전용사님들을 직접 만나 삶을 기록하고 AI로 꿈을 다시 그려드릴 수 있어 뜻깊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 주민 모두가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보경 세종갤러리 관장은 “이번 작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한 사람의 소중한 삶을 마주하는 치유의 시간이었다”라며 “아무것도 모를 어린 나이에 전장으로 가야 했던 어르신들을 보며 전쟁의 비극을 깊이 느꼈다. 청소년들이 이를 통해 단단한 마음을 키우길 바라며, 향후 경찰관과 소방관의 이야기로 프로젝트를 이어가 세종시의 소중한 역사 자료로 남기겠다”고 밝혔다.

안종배 남세종종합청소년센터장은 “청소년들이 직접 참전유공자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을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되었다”며 “지역의 역사를 청소년의 시선에서 기록하고, 세대 간 공감과 보훈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참전용사들이 원했던 것은 거창한 훈장이 아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것’이었다.

청소년들의 손으로 되살려낸 참전용사들의 숨겨진 눈물과 고백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수많은 소년 영웅들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엄숙히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