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장기 기억 유지 메커니즘 규명

2026-07-07     이성현 기자
별세포가

[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국내 연구진이 뉴런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뇌 속 비신경세포인 ‘별세포(Astrocyte)’가 장기 기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핵심 열쇠라는 사실을 동물 실험을 통해 세계 최초로 입증해 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은 한국뇌연구원(KBRI)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뇌 속 별세포에 존재하는 특정 단백질이 장기 기억 유지의 핵심 메커니즘임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본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전자로 알려진 ‘Ank2(Ankyrin-2)’ 단백질이 뇌 속 별세포에도 높은 수준으로 발현된다는 점에 착안해 시작됐다.

연구팀은 이 단백질이 별세포의 구조를 유지하고 신경세포와의 상호작용을 도와 기억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을 위해 별세포에서만 선택적으로 Ank2를 제거한 특이 결손 생쥐 모델을 제작했으나 초기 행동 실험에서는 예상과 달리 학습 직후의 ‘최근 기억’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 연구가 한 차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포기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의 변화에 주목했다.

학습 2주 후 ‘장기 기억’을 측정하자 Ank2가 없는 생쥐의 기억 능력이 현저히 감소하는 뚜렷한 손상 현상이 발견된 것이다.

원인을 분석한 결과 Ank2가 사라진 별세포는 구조가 단순해지면서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인 ‘엔그램(engram) 신경세포’와의 물리적 접촉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기억 형성과 학습의 핵심인 ‘장기강화(LTP)’ 유지 능력이 떨어졌다. 별세포가 단순한 보조 세포가 아니라, 장기 기억을 붙잡아두는 능동적인 제어자임을 증명한 순간이다.

연구팀은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도 정밀하게 추적했다.

별세포 내 Ank2가 결손되면 칼슘 신호 전달 체계가 약화되고, 신경세포 간 연결을 강화하는 핵심 단백질인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에 대한 반응성이 크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별세포의 BDNF 신호 경로만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존 기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에 연구팀은 KAIST 허원도 교수 연구팀의 단백질 조절 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별세포 특이적 BDNF 관련 신호를 자극할 수 있는 독자적인 광유전학 도구인 ‘Opto-T1’을 직접 개발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 새로운 도구를 통해 생쥐의 별세포 신호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한 결과, 실험동물들이 기존보다 장기 기억을 훨씬 더 오랫동안 유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확인했다.

고우현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는 오랜 기간 뉴런 중심으로만 국한되어 있던 기억 연구의 지평을 별세포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며 “향후 노화나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저하, 알츠하이머병 같은 기억 관련 뇌 질환의 치료 방향을 제시하는 새로운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팀은 이번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 등 뇌발달장애 단계에서의 Ank2 역할을 규명하고, 공포 기억이나 사회적 기억 등 다양한 형태의 기억 과정으로 확장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