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자기장 대신 ‘전압’으로 큐비트 정밀 제어 성공
[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원자나 분자 수준의 미시 세계에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할 핵심 원리가 국내외 공동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기존 양자 제어의 한계였던 주변 간섭 문제를 전압 제어 방식으로 극적으로 극복해 내며 다수의 큐비트가 집적된 차세대 분자 기반 양자소자 구현에 청신호가 켜졌다.
기초과학연구원(IBS)는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이 독일 카를스루에공과대학교(KIT)와 교환 상호작용을 이용해 자기장 대신 오직 전압만으로 단일 분자의 큐비트(양자정보 기본 단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기존 양자 제어 방식은 주로 자기장을 이용해 왔으나 자기장의 영향이 주변 소자까지 넓게 퍼지는 특성 때문에 원하는 큐비트만 선택적으로 정밀 제어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존재했다.
공동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화마그네슘 표면 위에 ‘철 프탈로시아닌 단일 분자’와 ‘철 원자’가 결합한 분자 복합체(Fe-FePc)를 제작했다. 이후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전자스핀공명(ESR) 기술을 결합한 첨단 장비를 활용해 원자 수준의 해상도로 개별 분자의 양자 스핀을 정밀하게 관측했다.
연구 결과 주사터널링현미경의 탐침(바늘 끝)에 가하는 전압을 높이자 큐비트의 스핀 공명 주파수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상이 포착됐다.
특정 전압 이상에서는 스핀 공명 주파수가 비선형적으로 요동치는 ‘비선형 스핀-전기 결합’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기존에 학계에 보고된 분자 스핀 전기적 제어 효과의 약 30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정밀도와 제어 수치다.
연구진은 이론 분석을 통해 이 현상이 단순히 전기적 위치 변화 때문이 아니라 탐침과 분자 사이의 ‘교환 상호작용’이 전압에 따라 강해지면서 큐비트의 스핀 에너지와 공명 주파수가 변하기 때문이라는 원인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이론과 실험을 극도로 고도화한 끝에 도출된 5년 이상에 걸친 장기 공동 연구의 결실이다. 연구진은 개별 분자에서 전자 스핀 공명(ESR)을 구현해 낸 기존 선행 연구들을 발판 삼아 연구를 시작했으나 극저온·초고진공이라는 극단적인 측정 환경 속에서 직류(DC) 기반의 코히런트 제어(결맞음 제어) 메커니즘을 규명할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의 세계적 이론 모델과 빌케 연구팀의 정밀한 실험 역량이 시너지를 내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특히 이번 성과는 고주파를 이용한 복잡한 제어 장치 없이, 단순한 직류(DC) 전기 신호만으로 원자 몇 개 규모의 양자상태를 흐트러짐 없이(양자 결맞음 유지) 통제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차별성을 지닌다. 원자를 하나씩 조립해 내는 ‘바텀업(bottom-up)’ 형태의 이 양자 제어 기술은 향후 반도체 미세화 한계를 뜻하는 ‘무어의 법칙’을 극복할 혁신적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교신저자인 크리스토프 울프 IBS 연구위원은 “이번 성과는 두 개의 분자가 인접해 결합한 구조에서도 오직 탐침 바로 아래에 위치한 단 하나의 큐비트만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며 “이는 향후 대규모 큐비트를 집적한 분자 기반 양자소자 및 고정밀 양자 센서 개발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