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식물 세포벽 파손 알리는 '위험 신호 감지체' 최초 규명
[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건물에 파손 감지 경보기가 작동하듯, 식물이 외부 공격으로 세포벽이 손상됐을 때 이를 위험 신호로 인식해 스스로 면역을 가동하게 만드는 감지 수용체의 실체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처음으로 규명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유전체 교정 연구단 구본경 단장 및 식물연구팀이 식물 세포벽 당 분자 조각과 세포 표면 수용체 간의 결합을 대규모로 추적하는 고속 스크리닝 기술을 완성했다고 23일 밝혔다.
식물의 세포벽은 병원균 침입을 막는 첫 번째 방어막(primary barrier)이다.
병원균 공격으로 세포벽이 분해될 때 생성되는 특정 당 분자 조각은 식물 자체의 위험 신호(DAMP)로 작용하지만 수백 종에 달하는 후보군 때문에 실제 신호 물질과 이를 수용하는 인자를 규명하는 데 난항을 겪어왔다.
연구진은 애기장대 세포막 수용체 단백질 357종의 세포외도메인과 세포벽 유래 당사슬 122종을 교차 반응시켜 총 4만3554개의 상호작용을 정량 분석했다.
그 결과 람노갈락투로난-I(RG-I) 분자와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감지 수용체 6종을 발굴하고 이를 'ARM(Awareness of RG-I Maintenances)'으로 명명했다.
연구팀이 식물에 RG-I를 미리 투여한 결과 방어 유전자 발현이 대폭 증가하고 병원성 세균에 대한 저항성이 상승하는 '면역 프라이밍(Immune Priming)' 현상이 관찰됐다.
특히 RG-I는 기존에 규명된 면역 신호들과는 차별화된 신호 전달 경로를 활성화해 식물의 다각적 방어 체계를 가동시켰다.
나아가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ARM 수용체 6종을 완전히 제거한 6중 돌연변이 식물을 제작했다.
해당 돌연변이 식물은 RG-I를 투여해도 위험을 인식하지 못해 면역 활성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병원균 감염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여 ARM이 핵심 감지체임을 입증했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제거 시 다른 수용체가 역할을 대신하는 '기능적 중복성(Functional Redundancy)' 문제로 초기 분석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연구 범위를 실제 병원균 감염 및 장기 면역 반응까지 확대해 수용체군의 결정적 역할을 검증해냈다.
이번 연구는 단일 유전자 중심의 기존 연구 방식을 벗어나, 수만 건의 단백질-당사슬 결합 데이터를 체계적 정량 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는 범용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연구진은 축적된 대규모 데이터를 머신러닝 기반 분석과 결합해 미지의 당사슬 수용체를 추가 발굴하고, 나아가 인공적인 당사슬 수용체 단백질 설계 및 공학 연구로 스펙트럼을 넓힐 계획이다.
이두화 초빙연구위원은 "수만 건의 상호작용을 정량화할 수 있는 이번 플랫폼은 병에 강한 차세대 작물 개발과 식물 면역 메커니즘 해석의 중요한 기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