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섭의 음악살롱] '음악이 그리는 서사의 곡선' 피아니스트 유모세

[대전지역 음악 현장을 소개하다 15]

2026-07-23     바이올리니스트 임현섭

음악은 하나의 작품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러 해에 걸쳐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피아니스트 유모세는 2024년 'Iter-여정', 2025년 'Resonance-공명'에 이어 오는 8월 20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3년 연작의 마지막 무대인 'The Arc'​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다섯 개의 작품을 다섯 개의 장면으로 구성해 하나의 서사를 완성하는 독주회다. 피아니스트 유모세를 만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번 리사이틀 'The Arc'는 어떤 공연인가요? 제목에 담긴 의미도 함께 소개해 주세요.

‘Arc’는 곡선이라는 뜻입니다. 이번 공연은 다섯 개의 작품을 다섯 개의 장면으로 엮어, 시작과 끝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무대입니다. 바흐의 질서에서 출발해 베토벤의 갈등, 쇼팽의 폭발과 이중성을 지나 마침내 하나의 귀결에 이르는, 감정의 곡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분들이 ‘다음 곡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는가’를 궁금해하며 따라오시기를 바랐습니다. 무대에는 피아노 한 대뿐이지만, 그 안에 오케스트라의 합주도, 실내악의 대화도, 홀로 고백하는 독백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Q. 이번 공연은 3년 연작 프로젝트의 마지막 무대입니다. 'Iter', 'Resonance'를 지나 'The Arc'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은가요?

2024년의 ‘Iter(여정)’는 길에 관한 공연이었습니다. 여정과 방랑, 예술가로서 제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묻는 무대였습니다. 2025년의 ‘Resonance(공명)’는 울림에 관한 공연으로, 소리의 물리적 공명과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공명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탐구했습니다. 길을 걷고 울림을 발견하고 나니,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였습니다. 길과 울림이 쌓이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The Arc’는 그 3년의 시간을 하나의 곡선으로 완성하는 자리입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대전에서, 해마다 저의 공연장을 찾아주신 관객분들과 함께 쌓아온 것이기에 저에게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Q. 바흐, 베토벤, 쇼팽의 작품을 질서·갈등·폭발·이중성·귀결이라는 5막 구조로 구성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곡을 하나씩 나열하기보다, 하나의 감정이 태어나 흔들리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질서(바흐)–갈등(베토벤)–폭발(쇼팽 스케르초 2번)–이중성(쇼팽 발라드 2번)–귀결(쇼팽 발라드 3번)의 다섯 장면으로 짰습니다. 바흐의 흔들림 없는 질서라는 견고한 땅이 있어야 이후의 균열이 비로소 의미를 갖고, 스케르초의 폭발이라는 가장 깊은 지점을 지나야 두 개의 발라드가 도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발라드는 같은 작곡가의 같은 장르이면서도 정반대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2번이 분열 속에서 끝난다면, 3번은 모든 것을 끌어안고 다시 빛 속으로 돌아옵니다. 한 작품 한 작품의 위대함을 각각 보여드리기보다, 그 작품들이 이어질 때 생기는 하나의 ‘흐름’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Q. 피아노를 '구조적 언어'라고 표현하셨는데, 연주자로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피아노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기술로 소리를 재현하는 악기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사유를 담아내는 언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의 선율이 긴장을 만들고 하나의 화성이 그것을 풀어낼 때, 음악은 이미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구조적’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음 하나하나보다 그 음들이 놓이는 순서와 관계가 의미를 만든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음악감독이자 사운드 디자이너로 무대를 만들어 오면서, 소리가 공간 안에서 하나의 ‘장면’이 되는 순간을 늘 지켜봐 왔습니다. 이번 무대에서는 조명이나 장치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그 장면들을 세워보려 합니다.

Q. 이번 공연에서는 'The Arc Companion'과 인터루드 등 공연의 몰입을 돕는 다양한 장치도 준비했습니다. 관객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요?

‘The Arc Companion’은 공연 전·중·후를 함께하는 작은 소책자입니다. 공연 전 로비에서는 기대를 여는 짧은 글을, 공연 중에는 지금 어느 장면을 지나고 있는지와 ‘이 대목에서는 이런 것을 들어보시라’는 안내를, 공연이 끝난 뒤 집에서는 곡 해설과 에세이를 읽으실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특히 곡과 곡 사이에는 객석에 잠시 불이 들어오는 짧은 인터루드를 두어, 짧은 음성 안내와 함께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했습니다. 관객분들이 음악을 그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듣고 참여하면서 이야기를 스스로 완성해 가시기를 바랐습니다.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 그 곡선이 어떤 이야기로 완성될지는 사실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 시간을 함께 걸어주신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 리사이틀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 공연은 저 혼자 그리는 곡선이 아닙니다. ‘Iter’와 ‘Resonance’를 함께해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이 세 번째 장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는 8월 20일 저녁, 대전에서 다섯 개의 장면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그 곡선을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어떤 의미로 완성되는지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오셔서, 오래 마음에 남는 하나의 경험을 안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피아노 리사이틀은 흔히 하나의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무대로 인식되지만, 이번 'The Arc'​는 작품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 관객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연주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적 흐름과 관객이 스스로 완성해 나가는 감상이 자연스럽게 맞닿는다면, 공연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 남게 된다.

연주자로서 무대는 작품을 연주하는 공간인 동시에 관객과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유모세의 이번 리사이틀 역시 음악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갈 수 있는 무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자세한 공연 정보는 대전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