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섭의 음악살롱] 첼리스트 황진하 “첼로에 담은 오늘”
[대전지역 음악 현장을 소개하다 16]
한 사람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는 연주를 듣는 것만큼 그가 걸어온 시간을 들여다보는 일도 중요하다. 어떤 음악가가 어떤 환경에서 음악을 배웠고, 어떤 무대를 경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고민했는지는 결국 그의 소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황진하가 자신의 여섯 번째 리사이틀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9월 10일 오후 7시 30분 피아니스트 김민경과 함께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의 제목은 ‘Becoming(비커밍)’이다.
‘Becoming’은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미 완성된 모습보다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단어다. 오랜 시간 첼로를 연주해온 황진하가 자신의 여섯 번째 독주회에 이 제목을 붙였다는 점에서 이번 무대는 한 연주자의 현재와 앞으로의 음악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음악 여정은 비교적 일찍 해외로 이어졌다.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서 공부한 뒤 독일로 건너가 쾰른 음악대학에서 앙상블과 솔리스트 과정을 공부했고, 이후 뉘른베르크 음악대학 석사과정을 최고점수로 졸업했다.
독일에서는 NRW Projektorchester ‘Sinfonia’ 그리고 Opernakademie henfenfeld에서 솔리스트 및 객원수석으로 활동하였으며 이탈리아 Citta' di Caserta 국제콩쿠르와 Domenico Savino 국제콩쿠르에서도 3개 부문 1위 라는 성과를 거뒀다. 대전아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수석을 역임하고 현재는 All that Cello와 The Cellists의 단원, 대전아트오케스트라 수석과 국립심포니콘서트오케스트라(KNCO) 단원으로 대전의 음악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화려한 이력만 놓고 보면 황진하의 음악적 여정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루어낸 시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리사이틀의 제목은 의외로 ‘완성’이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이번 공연은 어떤 의미일까. 첼리스트 황진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이번 제6회 독주회의 부제를 ‘Becoming’이라고 정하셨습니다. ‘완성’이 아닌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음악가가 되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음악가가 되어간다’는 것은 결국 ‘겸손을 배워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광활한 자연이나 무한한 우주를 바라볼 때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끼듯이, 음악이라는 거대한 예술 앞에서도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연주하고,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여긴 채 연주하면 그 마음가짐이 결국 무대 위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런 연주는 저 자신도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대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도 그런 겸손인 것 같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학생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을 마주했을 때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말이죠. 저 역시 그렇게 음악을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동일한 태도를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Boccherini, Beethoven, Brahms의 작품을 통해 시대에 따라 첼로의 목소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세 작곡가의 B를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아 ‘Becoming’이라는 부제를 붙였고, 첼로의 목소리가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것처럼 저 역시 음악가로서 계속 변화하고 깊어져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무대 역시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라기보다 지금의 제가 음악가로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유럽에서 공부하시고 다양한 연주 경험을 하신 것이 현재의 음악 해석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감사하게도 성악가이신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유럽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첼로를 처음 배울 때 만났던 선생님께서도 굉장히 훌륭하게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틀에 박힌 해석을 따르기보다는 음악을 자유롭게 바라보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이후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다양한 음악가들과 생활하면서 제가 경험하고 배워왔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음악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음악을 바라보는 열린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틀리면 안 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음악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음정에 대한 두려움도 그런 변화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완벽하게 틀리지 않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음악의 흐름과 표현을 놓치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음악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전히 음정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제 음악 안에서 어떻게 다루고 극복해나갈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시절은 완벽함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제 방식으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배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연주를 오래 하다 보면 같은 작품을 이전과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새롭게 들리거나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연주자로서 어떤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연륜’인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면서 나만의 경험과 데이터가 쌓인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같은 작품을 바라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적 색깔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석사과정을 할 때 교수님께 작곡가마다 같은 악상기호를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미묘한 음악적 뉘앙스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그 이론들을 모아놓은 책이 있는지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웃으시며 “그건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경험을 통해 체득하지 못한 것을 지식으로라도 먼저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프로 연주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그 말씀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책이나 누군가의 설명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감각이 있고, 결국 그것은 시간을 들여 음악과 부딪히고 스스로 경험해보는 과정 속에서만 생겨난다는 것 말이죠.
그 교수님께서는 은퇴하신 뒤에도 매일 아침 스케일과 하이든 D장조 첼로 협주곡을 연습하신다고 하셨는데, 같은 작품인데도 매일 새롭고 그 발견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예전보다 작곡가마다, 또 시대마다 가지고 있는 감정과 언어의 차이를 느끼고 표현하는 데 조금씩 깊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더 쌓였을 때 같은 작품을 또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게 될지, 그것 역시 연주자로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Q. 그렇다면 이번 독주회 이후, 앞으로 어떤 음악가로 계속 ‘되어가고’ 싶으신가요?
음악가로서의 목표라면, 사람들이 제 연주를 기다리고 제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궁금해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독주를 준비할 때는 제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어가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음악적 생각과 감정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원하는지도 함께 고민하는 편입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어떠한 감정이 오래 남을 수 있는 연주, 제가 선택한 음악적 방향이 관객에게 분명하게 전달되는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음악과 관객이 경험하는 음악이 만나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찾아오고,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마저 설렘이 될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런 순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음악가로서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는 시간들을 관객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가는 과정 자체를 함께 지켜봐 주실 수 있다면, 그것 또한 ‘Becoming’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진하의 ‘Becoming’
이번 무대는 완성된 한 사람의 음악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는 한 첼리스트의 모습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첼로가 들려주는 한 음 한 음 속에서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이번 인터뷰를 통해 느꼈다. ‘음악가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음악가가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자세한 공연 정보는 대전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