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유관순 독립유공자들 잘못된 기록 많다”
충남 넷 대형포털사이트·백과사전 등 공식 소개 기록 문제 심각
새누리당 이명수 (충남 아산)국회의원이 대형포털사이트 및 백과사전들에 기록(게재)된 유관순열사 등 독립유공자들의 이력·경력·활동사항 등이 제각각으로 소개(서술) 되어 있다면서 정부차원의 즉각 정정 및 개선 요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명수 의원은 유관순 열사 등 5인의 선생에 대한 대형포털사이트 및 백과사전 등에 제각각으로 기록된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먼저 유관순열사와 관련한 8가지 기록 사항들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첫 번째 출생일은
네이버(NAVER)·위키백과에는 1902년 11월 17일으로, 다음(daum)·네이트(NATE)·두산백과·충남.넷에는 1902년 12월 16일로, 브리태니커(britannica)에는 1902년 3월 15일로, 한국근현대사사전·인명사전에는 1904년으로 제각각 표기되어있다.
두 번째 사망일은
NAVER·Daum·NATE·두산백과·충남.넷에는 1920년 9월 28일로, 위키백과에는 1920년 9월 28일 또는 12월 16일로, 한국근현대사사전·21세기정치학대사전·브리태니커에는 1920년으로, 인명사전에는 1920년 10월로 기록되어있다.
세 번째 출생지는
NAVER·시사상식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브리태니커에는 ‘충남 천안군 동면 용두리’로, 위키백과에는 ‘대한제국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 천안시 목천면 용두리)’로 표기돼 옛 지명 그대로 사용되어 국민들의 혼선을 줄 가능성이 있다.
네 번째 학력은
1915년에 이화학당 보통과 편입(NAVER·두산백과), 1916년 이화학당 초등부 3학년 편입(위키백과)·이화학당 교비장학생 입학(21세기정치학대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18년 이화학당 입학(한국근현대사사전·충남.넷)·고등과 교비생 입학(두산백과·시사상식사전), 1919년에는 이화학당 고등부 진학(위키백과)·이화학당 고등과 1화년 3학기(21세기정치학대사전)·이화학당 고등과 1년생(한국민족문화대백과·충남.넷)으로 각각 표기돼 있다.
다섯 번째 3·1 만세운동 발생일은
NAVER와 위키백과에 1919년 3월 1일로 표기돼 음력과 양력이 제대로 표기가 안 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한국근현대사사전에는 1919년 양력 4월 2일(본래 양력 4월 1일)으로 ‘오기(誤記)’가 발생하였다.
여섯 번째 3·1 만세운동 발생장소는
NAVER·위키백과·21세기정치학대사전·두산백과·시사상식사전·충남.넷에는‘아우내’로, 한국근현대사사전에는‘아오네’로, 인명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브리태니커에는 ‘아오내’로 표기되었다.
일곱 번째 형량은
NAVER·두산백과·시사상식사전에는 3년, 위키백과에는 5년 또는 1년 6개월, 한국근현대사사전·21세기정치학대사전·인명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충남.넷에는 7년으로 각각 다르게 기록되었다.
여덟 번째 사망원인은
NAVER에서는 ‘고문으로 인한 장독’, 두산백과에는 ‘고문에 의한 방광파열’로, 위키백과에는 ‘고문 후유증’, 시사상식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브리태니커·충남.넷에는 ‘고문을 받고 순국’이라 쓰여 있다.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으로 알려진 한용운 선생의 경우, 위키백과에서 출생지를 ‘홍주’(現 충남 홍성)라고 옛 지명 그대로 표기해 혼선을 주었다. 또한 승려가 된 시기조차 1893년, 1894년, 1896년, 1905년으로 각각 표기되어 있었다.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한 시기를 위키백과·두산백과·브리태니커에는 1931년으로 되어 있으며, 충남.넷에는 1930년으로 나와 있다.
충남 예산 출신인 윤봉길 의사의 기록에 대해 충청남도청 공식 홈페이지(충남.넷)에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본래 시량리)로 표기되어 있어 기본적인 사항인 출생지조차 오기(誤記)가 되어 있었다.
이동녕 선생의 상동청년회 및 신민회 조직과 관련하여 정확한 내용은 ‘상동청년회는 전덕기·양기탁·신채호·조성환 등과 같이 조직하였으며, 신민회는 안창호·전덕기·양기탁 등과 같이 조직’인데,
충남.넷에는‘제1차 한일협약 체결로 국권이 위축되자 상동청년회를 조직, (중략) 1907년 신민회를 조직’이라고 선생의 단독 조직 결성이라 기술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부실하게 기록되어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또한 한국독립당 조직시기도‘1928년·1929년·1930년대’로 제각각 표기했다.
독립협회를 공동 창립한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의 경력 표기가 네이버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네이버의 경우 ‘박정양이 초대주미공사로 갈 때 1등서기관으로 근무’라고 나왔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2등서기관’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종일 선생의 업적 중에서는 <뎨국신문>과 <제국신문> 창간과 관련해 표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1898년 순수 한글 신문인 <뎨국신문>이 창간되었으며, 1903년 7월 7일 <제국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였다. 다수의 포털사이트와 백과사전에는 ‘1898년 <제국신문> 사장 또는 창간’이라 표기하였다.
이처럼 정확히 구분지어 놓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의 역사적 사실 인식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아 혼선을 줄 것이다. 또한 선생의 출생지와 관련한 사항에서도 NAVER·두산백과·충남.넷에는 충남 태안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충남 서산으로, 심지어 인명사전에는 경기도 포천으로 적혀있었다.
게다가 선생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도 NAVER에서는‘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초가에서 영양실조 끝에 서거’·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지조를 지키다가 아사’라 언급하며 심지어 충남.넷에는‘대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나 가정은 돌볼 겨를이 없어 영양실조로 아사 순국’이라 쓰여 있어 문맥상 의미가 맞지 않는데도 버젓이 기술하고 있다.
이 의원은 “우리 충남 지역의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더 많은 역사적 위인들에 대한 내용이 오류를 범하고 있을 것이다. 대형포털사이트 및 각종 백과사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중요한 정보제공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인물 기술 등에 세심한 분석과 확인이 필요하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들이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관련내용을 재검토하여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국가기록원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및 충남의 국가유공자들의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앞장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