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만 있으면 어디든 그곳이 집”
전원생활 즐기는 KBS대전 이종태 아나운서 부장·오정숙 여사 부부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 유성 IC를 지나 15분쯤 달리니 어느덧 행정구역이 공주로 바뀐다. 대전에서 20km 정도 달렸을까. 주변 경치를
살피다 보니, 녹음 속에 띄엄띄엄 전원주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복잡하고 오염된 도심을 벗어나 근교에 전원주택을 짓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된지 꽤
오래다. 대전과 가까운 공주에도 이미 반포면 봉곡·공암리 등지에 아름다운 전원주택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KBS대전 이종태(56) 아나운서 부장과 아내 오정숙(54) 여사
역시 계룡산 정기가 이어지는 산기슭에 아담한 빨간색 벽돌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누리고 있다. 대전과 공주 시내 중간 위치라는 편리한 생활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푸르른 환경을 자랑한다. 7월 17일, 때마침 전국적으로 쏟아진 거친 빗줄기 속에서도 나무와 숲은 아랑곳
않고 짙은 풀내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리정(吳李亭),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종태 아나운서 부장의
집은, 앞쪽에 개울이 흐르고 주변은 산으로 둘려 싸여 마치 ‘배산임수(背山臨水)란 이런 것’이라고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90년 공주방송국에
근무하던 시절, 한적한 시골생활을 하고 싶어 ‘어디 5백만원 짜리 땅 없나’ 둘러본 것이 시초였다. 막상 알아 가다 보니 욕심이 생겨 25곳이나
돌아다녔고, 지금의 이 땅을 발견했다. 389평. 너무 맘에 들었지만 값이 만만치 않았다. 발걸음을 돌리고도 자꾸만 눈에 밟혀 은행에 도움을
받아 평당 13만원씩 5천만원을 주고 샀다. 처음 목표로 세운 5백만원 짜리 땅은 10배의 부담으로 불어났지만, 마음은 100배 정도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6년 뒤에 지금의 벽돌집을 지을 수 있었다. 이것도 건평 30평을 넘기면 농협 대출이 어렵다고 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집을 지어 놓고도 이종태 부장의 잦은 발령 때문에 제대로 정착한 것은 1년이 채 안된다. 공채로 KBS대전에
입사한 뒤 남원을 시작으로 공주, 대구 등 총 13번의 발령을 받았다. 94년에는 송해 선생을 대신해 두 달간 땡볕 아래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개편 때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활이었다.
“지금은 빚도 거의 다 갚았고,
온전히 이곳에서 생활하게 되어 너무 뿌듯하다”는 이종태 아나운서 부장은, 퇴근 후나 주말에는 되도록 집을 벗어나지 않는다.
“빨래를 털어
널 때 나는 말끔한 느낌, 설거지를 하고 난 뒤의 뽀드득한 기분이 좋습니다. 몸도 마음도 상쾌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워낙
애처가인 이유도 있지만, 텃밭을 가꾸고 장작을 패는 등 바깥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마을 교회를 다니며, 동네 소식과 이웃간의 정을
쌓아야 하고, 대문 없는 집을 든든하게 지키는 진도개 진돌이와 아름이, 닭 5마리와 본격적으로 깃털이 자라기 시작한 병아리 4마리도 돌봐야
한다.
“잔디를 심고 가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토끼풀, 질경이, 민들레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번진다니까요.”
오정숙 여사의
설명처럼 유난히 깔끔한 잔디밭도 손이 많이 간 부부의 작품이다.
전원생활을 정착할 수 있었던 데는 아들과 딸이 각자 앞가림을
잘 해 준 덕도 크다. 아들 이왕군은 올해 6월 베이징영화대학 감독학과를 졸업했고, 딸 이소리양은 이대를 졸업한 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방학을 맞은 딸 소리양이 업무 차 방콕에 있게 되어 가족들이 모두 태국 방콕에 모여, 회포를 풀기도
했다.
이종태 부장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별채. 2평이 채 안되는 황토방을 지어 놓고 오리정(吳李亭)이라 이름 붙였다. 이는
부부의 성을 딴 것으로, 오씨와 이씨가 머무는 정자라는 뜻이다. 벽 두면을 모두 유리로 마감해 경치를 놓치지 않게 했고, 바닥은 땔감으로 달굴
수 있게 했다. 한번 불을 지펴 놓으면 흙의 속성상 오래 가기는 하지만, 나무를 때어 불이 올라오는 데는 무려 3시간이 걸린다. 요사이 몸이
조금 편치 않은 아내 오정숙 여사는, 땔감을 해 올 남편이 안쓰러워 온돌방은 극구 사양하고
있다.
오리정에 앉아 나무줄기 사이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오정숙
여사가 빚은 흑미 구름떡을 먹고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중국어 배우며
남다른 금실 자랑
72년 8월 13일. 그 해 KBS남원 방송국으로 첫 발령받은 이종태 아나운서는 직원들과
함께 곡성으로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뉴스를 녹음한 뒤 뒤늦게 혼자 따라가던 이종태 아나운서의 눈에 파란 원피스와 운동화 차림에 책을 든 한
아가씨가 보였다. 아가씨도 엄한 집안 탓에 뒤늦게 친구를 따라 놀러 가던 차였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약속이나 한 듯 아리따운 아가씨가 계속
눈에 들어오자, 이종태 부장은 야유회는 뒷전으로 밀어 두고 용기를 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렵사리 말을 붙였지만, 아가씨는 시 한편 적어
주고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헤어졌다. 하지만 인연은 이래서 인연일까. 그로부터 꽤 훗날, 이종태 아나운서는 남원방송국 뒤뜰에서 우연찮게 그
아가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세월은 흘렀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가씨는 오리정 안주인이 되었다.
“결혼한 뒤 좁디좁은 집에서 아버지는
중풍으로 18년을 고생하셨고, 어머니는 한미시장에서 나물을 파셨습니다. 그 틈에서 아내는 아들을 낳고 산후병으로 온몸에 관절염이 퍼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퇴근 시간만 가까워 오면 ‘오늘은 아내가 도망가지 않았을까’ 마음 졸였다. 그러던 중 둘째 딸 소리가
태어났다. 태어나기 전부터 집안에 좋은 징조를 안겨 주던 딸은 세상을 봄과 동시에 엄마의 산후병을 걷어 버렸다. 게다가 전화도 없던 시절,
처가에 갔다 ‘모처럼 가족끼리 몰래 피서나 한번 갈까’ 했으나 딸이 설사를 하는 바람에, 발목이 묶였다. 덕분에 아버지 부음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좋은 심성뿐 아니라 똑똑함까지 갖춘 아들과 딸은 예나 지금이나 이들 부부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이종태 아나운서 부장은 현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94.7MHz, 882KHz를 통해 ‘충청권
네트워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대전과 충남북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각 지역의 미담과 화제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이 아나운서는
사단법인 국제교류문화원의 이사도 맡고 있다. 덕분에 한·중·일 문화 교류에 관심이 많은 것은 물론, 부부가 중국어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다.
“중국어는 4개의 성조를 가지고 있어, 배울수록 재미가
있다”는 오정숙 여사는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것으로 짐작된다. 이종태 부장은 아내와 함께 해금을 들고 해외에 나가 아리랑을 연주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에, 해금도 배웠다. 뿐만 아니다. 단소, 대금, 판소리에 까지 손을 뻗칠 정도로 전통 문화에 관심이 깊다.
“아내만 있으면 어디든 그곳이 집”이라는 이종태 아나운서 부장. 예로부터 어른들이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지칭한 것을 이렇게 풀이하며 아내 사랑을 자랑한다. 한적한 전원주택에서 키워 나가는 부부의 정만큼이나 하늘도 쾌청해지기를, 호우주의보가 내린 7월 어느날 기원해 보았다.
/ 이루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