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웃는다”

45년 전인교육에 힘 쏟고, 책 읽는 노년 즐기는 송근영 교장

2006-08-10     이루리 기자

엄마 배를 툭툭 투덜투덜
젖꼭지를 덥석 쭉쭉쭉
윤기가 졸졸 토실토실
온 동네 소문난 큰 소 되어라.

-송근영 작,  [송아지]


툭툭, 투덜투덜, 쭉쭉, 토실토실… 의성의태어가 곰살맞기 그지없다. ‘어떤 아이가 지은 동시일까?’ 하겠지만, 올해 82세를 맞은 송근영 교장이 쓴 시다. 

45년 5개월을 초등학교 담장 안에 쏟아 붓고 그 울타리를 벗어난 지 20여년이 다 되어 가건만, 송 교장에게선 아이같이 천진한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자라고,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지금도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싶어 초등학교 앞을 찾아갈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FORU는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행복’ 키워드의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하고 KBS 이종태 아나운서 부장을 인터뷰하고자 연락을 취했다가, 외려 ‘이런 분이 계시다’고 소개를 받게 되었다. ‘나는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뿐’이라며 인터뷰를 사양하던 송 교장은, 만나 뵈니 역시 전인교육을 몸소 실천한 보기 드문 스승의 모습이었다. 80년 KBS 대전의 ‘우리학교 최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종태 아나운서와 인연을 맺고, 26년째 세대를 뛰어넘은 천진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이 아나운서가 첫 눈 내리던 날, ‘선생님, 첫눈이 오네요. 너무 좋아 전화드립니다’하니, 송 교장은 들뜬 목소리로 ‘그래요, 나도 너무 좋아요! 아이들이 모두 강아지처럼 좋아해요. 오늘 수업 끝~!’하고 화답했을 정도다.

그런 송 교장의 마음은 고스란히 시어로 떠올랐고, 교직에 몸담고 있던 젊은 시절부터 하나 둘 썼던 시를 바탕으로 8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첫눈]으로 등단했다. 

아이들은 사랑 먹고 자란다
“1학년은 코를 흘려 예쁘고, 2학년은 이가 빠져 귀엽고, 3학년은 까불어서 사랑스럽고, 4학년은 제법 의젓해서 신통방통하고, 5학년은 상급생 티가 나서, 6학년은 대장 노릇을 해서 예쁘다.”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다는 송근영 교장. 교편을 잡던 때는 매일 꼬박 출석을 부르고 이름 뒤에 ‘이빨 뽑았니?’ 같은 사소한 안부를 물어 그 많은 제자들의 이름을 95% 이상 기억하고 있다. 비록 출석 부르는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학교에 와서 교사로부터 이름 한번 불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배려한 것이었다.

“유독 오른발 왼발 신발을 구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신발을 바꿔 신는 아이들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도 나름의 이치가 있더군요. 최근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는데, 발 모양이 특이해서 신발 좌우 모양에 관계없이 어느 쪽에나 신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아이들을 존중한 송 교장은 주머니 속에 사탕과 조그만 상장을 준비해 다녔다. 덮어놓고 공부를 잘한다고 모든 상의 우선권을 주는 것을 꺼렸다. 낙서를 잘하는 아이에겐 글짓기 상을 주고, 싸움 잘하는 아이에겐 체육상을 줬다. 입학식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학부모들을 아이들 책상에 앉혀 놓고 교육철학을 전수한 뒤 아이 손 잡고 집에 돌아가게 했다. 졸업식 날도 성적이 좋은 학생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졸업장을 받는 학생을 지목해 읽게 했다. 책을 맛있게 읽은 아이에겐 낭독상을 줬는데 훗날 교수가 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봄이 되면 혹시 소풍가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을까 해서 교장실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이 그렇게도 사랑스러울 수 없었단다. 그런 마음에 소풍이나 운동회 날 훈시는 짧고 간결하게 했다. ‘저 파란 하늘을 빨래 짜듯이 꼭 짜면, 파란 물이 우리 운동장에 뚝뚝 떨어지겠지? 날씨 한번 좋구나. 훈시 끝!’하면 아이들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다. 심지어 송 교장이 지나가면 ‘날씨 한번 좋구나’ 따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은 사랑을 담뿍 주고 놀게 하면서 키워야 합니다.”

노는 숙제를 내주던 송 교장은 82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천진한 웃음과 활력을 지닌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선생님들에게 받은 사랑 덕이라고 밝힌다. 

보은초등학교에서 90년 8월 정년을 맞은 송근영 교장은 퇴직 후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 TV 심야 토론 등에 나와 전인교육과 교사의 중요성을 알려 왔다. 요즘은 퇴직한 교장들을 중심으로 한말글사랑학회 활동을 통해 1년에 한번 책을 내는 등 우리말 사랑을 퍼뜨리고 있다.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살자
“선풍기를 틀고 팬티만 입고 엎드려 책을 읽으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다”는 그는 요즘 종교, 철학 서적에 푹 빠져 있다. 5~6천권의 책을 정리하고도 200여 권이나 남았지만, 지금도 신문 스크랩을 하다 마음에 드는 책 소개를 발견하면 부인 몰래 슬그머니 사오기도 한다. 책 옆에서 스르르 잠들면 단잠이 따로 없다.

78년 어린이날인 5월 5일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그에게 많은 힘이 되어 준다. 두부, 마늘, 된장국, 우유, 토마토를 즐기는 건강한 식단은 활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 식사 후 혼자 독립선언서를 10분간 음독하면 소화도 잘되고 즐겁다. 독립선언서는 그 의미만큼이나 글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태어난 뒤 일주일쯤 지나 눈을 뜨는 것처럼, 나이가 드니 글을 음미하게 되고 뜻을 자연스럽게 깨치게 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웃습니다. 지금 몸이 웃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책을 읽다 목 돌리기 등 간단한 동작의 운동을 2시간가량 하고 동네 선술집에서 500원짜리 막걸리를 한 잔 마시면, 세상 그 누구 부럽지 않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또 행복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충분히 여유롭지요. 옆을 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횡적인 비교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견주어 보는 종적인 비교를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살자’는 송근영 교장. ‘푸른하늘 은하수’ 같은 동요를 좋아하는 그에게서 어느 노(老)교장의 넉넉함과 해맑음,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과연 나의 몸도 웃고 있는지, 슬그머니 거울을 보게 된다.   

 / 이루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