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
전 카이스트 로버트 러플린 총장, 한국 떠나며 남긴 마지막 메시지
출국 전 그가 내놓은 에세이집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에서는 카이스트 총장 재임(2004년 6월부터 2년간)기간 동안 자신이 겪었던 경험담과 심경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는데 그리 좋은
기억만은 아니다.
특히 국립대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러플린의 ‘과감한’ 혁신정책은 외국인 총장에 대한 카이스트 내부의
반발을 더욱 심화시켰다. 러플린은 무엇보다 대화와 논의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교수들의 의견이 어떤지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개혁을 추진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러플린의 바람일 뿐이었다.
“교수들은 한국 상황을 모르는 외국인이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과도한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교수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교직원들마저 내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인사권과 예산운영권이 없는 명목상 총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외국인 총장은 개혁의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2년 만에 쓸쓸하게 한국을 떠나게 됐다.
한국은 개혁보다 평화를 선택했다
“한국은 개혁보다 평화를 선택했다.” 연임이 거부되고 난 후 러플린이 했던 말이다. 러플린은 카이스트의 문제는 과학이나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소위 ‘카이스트 문제’는
교수와 교직원들로부터 제공된 내용들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나와 직접 인터뷰한 몇 안되는 보도내용들이 카이스트 측을 통해 보도된 내용과 달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러플린은 자신이 떠나는 시점에서 에세이집을 낸 이유도 ‘대외적으로 언론 접촉을 하지말라’는 지시가 있었고 상급기관의
말을 따라야 하는 입장에서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혁신적인 로드맵으로 개혁을 시도하고자 했던 그는 결국 2년 동안 내·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무원의 상태로
지내야 했고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객(客)으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한국을 떠나며
“한국과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에세이집을 냈다. 한국은 내 인생의 일부를 보낸 곳이기에 의미있는 나라다. 앞으로도 한국을 사랑할 것이고 한국 과학과 교육의 발전에도 힘쓸 것이다. 한국이 필요로 한다면 카이스트 자문역도 맡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