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영혼 보듬는 ‘독서치료’
책 통해 무의식의 메아리에 귀기울이다
최근 미술, 음악에 이어 ‘독서치료’가 떠오르고 있다. 조금은 생소하다. 독서의 중요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굳이 ‘치료’라는 의학적 용어를 거창하게 합성할 필요가 있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기자 역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가운데서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를 읽고, 개념 정도만 파악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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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별로 독서 자료를 활용해 책을 읽고 책 속의 문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안고 있는 심성적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다. 불과 몇 년 전 아동상담소 등에서 심리 상담의 보조로 쓰였던 독서치료가 이제는 일반 대중들에까지 성큼 다가온 것이다.
한밭도서관은 9월 13일부터 11월 15일까지 10주간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도서관측은 이에 앞서 지난 9월 9일 오후 2시 도서관 회의실에서 독서치료사인 홍근옥 강사를 초빙해 강연을 열었다. 홍근옥씨의 강연을 듣고 독서치료에 대한 이해를 높여 보았다.
독서치료는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도합 일곱 건에 달하는 차량 방화를 저지른 열다섯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세상에 대한 적의로 침울하면서도 날 선 소년의 눈빛 속에서는 경계심뿐이었다. 이런
소년이 봇물 터진 듯 자신의 감정을 쏟아 냈다. 바로 독서치료사가 권해 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한 권 덕분이었다.
고색창연한 절에 불을 지른 방화범의 내면을 탐미적 언어로 그려낸 소설 속에서, 소년이 발견한 것은 단 한번도 타인에게 드러내 보인
적 없는, 스스로 부정하기에 바빴던 자기 자신이었다. 소년은 고름을 짜는 듯한 고통과 안도감을 느꼈다.
이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육하던 내면의 괴물이 자취를 감췄고,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고통은 치료의 시작이고, 쾌감은 치료의 끝이 되었다.
위 사례처럼, 독서치료는 다양한 문학작품을 매개로 발달 뿐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 등을 가진 사람이 여러 가지 방법의 상호작용과 구체적
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서 독서치료사는 안내인 역할을 한다. 독서치료 과정에서는 저자의 개인사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심리학에 기반한 기질 테스트 등으로 정서 상태를 파악한 뒤, 매주 한권의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거나 명시를 즉석으로 패러디 해 자신을 드러내게끔 돕는다. 간단한 글쓰기도 빠지지 않는다. 홍근옥씨 역시 ‘본인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이 독서치료사’라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만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 주어진 삶 속에서 자기를 만들고 마음을 넓히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독서치료는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마음을 조금씩 넓히는 것이지요.”
‘독서지도’가 작가의 의도와 문학적 장치 등을 파고드는 것이라면, 독서치료는 문학적인 특성을
배제하고 읽은 이의 느낌과 생각에 초점을 맞춘다. 객관적으로 좋은 문구를 제외하곤 사람마다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다른 만큼, 줄 치는 부분도
자신의 경험에 맞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독서치료는 책을 통해 지식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대화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다.
동일시, 카타르시스, 통찰
지난해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가 젊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은 예쁘지도 않고 뚱뚱하며, 풀리는 일 하나 없는 노처녀로
설정되었는데 그의 당당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성들은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해, 그의 활약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드라마를 통해서도 자신을 통찰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서치료의 원리 역시 ‘동일시, 카타르시스, 통찰’로 축약할 수 있다. 책이 치료 도구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은, 책
속의 인물들은 행동보다는 말을 앞세우고, 말보다는 생각을 앞세우게 마련이어서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에서다.
또 독서치료는 시 치료, 글쓰기 치료, 이야기 치료로 나눌 수 있다. 시 치료는 가장 쉽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즉석으로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각광받고 있다. 문학에서 시의 창작은 심미성을 강조하지만 시 치료에서는 자기표현의 수단임을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독서치료사라는 이름이 아닌 시치료사라는 명칭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독서치료용 책을 고르는 것도 독서치료사의
몫이다. 독서치료용 책을 고를 때는 결말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자살, 도피 등 극단적인 결말이 나오는 책은 피하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실수투성이거나 수줍음이 많은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무턱대고 양서가 아니라, 개개인에 맞게 책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독서치료사들은 섣불리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병원 도서관 사서들이 매우 활발하게 이 분야를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서들은 독서가 환자들의
치료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고 책과 환자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어떤 특정 문제에 적절한 책들을 목록화할 뿐
아니라 치료적 질문이 실린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다. 국내의 경우, 2003년 한국독서치료학회가 창립한 뒤 우후죽순처럼 많은 기관에서
독서치료사를 양성하고 있지만, 아직 교과 과정이나 매뉴얼은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많은 독서치료사들의
활약을 기대해 봄 직하다.
문의 : 한밭도서관 042-580-4311
/ 이루리 기자 pinyro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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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치료사 홍근옥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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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서치료학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