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봉사활동 하며 못 이룬 꿈 역시 ‘남미’ 봉사

목원대 전직 학장 정만식씨 별세

2006-11-09     홍세희 기자

   
이 보다 값진 삶을 살 수 있을까. 형식이나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평생을 봉사에 바쳐온 전직 대학 학장  정만식씨. 목원대 사회과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다 2003년 8월 정년 퇴임한 그는 남미에서  봉사활동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난 10월 12일 오후 별세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향년 66세.

경남 고성이 고향인 고인은 경남에서 초·중·고 교사로 재직하던 1958년부터 제자들과 함께 고아원 등지를 찾았다. 벌써 오래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 1984년 목원대에 부임한 이후 1990년 초부터는 주변에 버려진 물건을 주웠다. 길에 버려진 옷가지와 장난감 가운데 쓸만한 것들을 모아 깨끗하게 빨고 닦아 틈날 때마다 복지시설에 전달했다. 복지시설에 전달하기 전에는 받을 사람들이 거부감 가질 것을 우려해 자신이 먼저 사용하는 배려도 잃지 않았다. 정씨의 봉사활동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그가 가르치던 제자들도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연구실로 가져왔고 물건이 많아지자 사용하던 승용차를 팔고 아예 1톤 트럭으로 바꿨다.

아들 태림(33)씨는 과거, “아버지가 버려진 옷들을 주워 오시면 어머니가 세탁과 바느질을 맡으셨다. 처음엔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 같아 좋게 보이지는 않았었다”며 “그러나 평생을 그렇게(봉사) 지내셨기 때문에 말릴 수 없었고 오히려 우리가 동화되었다”고 술회했다. 처음엔 고물을 주워 오는 정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부인 김씨도 목원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할 정도로 열심히 봉사활동에 임하게 되었다.

정씨는 정년퇴직 후 남미 개발도상국에서 자비(自費)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충남직업전문학교에서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며 5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의사소통을 위해 스페인어 공부에도 열을 올렸다.
이 가운데 2004년 여름 모 제약회사의 관절염 치료제 광고를 찍게 된 정씨는 광고 출연료를 현금 대신 퇴행성 질병 치료약으로 요구,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인생의 마지막을 오지에서 봉사하며 지내려 했던 정씨. 그러나 그는 지난 9월 초 기침을 하다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자 종합병원에 입원, 정밀검진을 받았다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는 마지막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이제 떠났지만 그의 숭고한 봉사정신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홍세희 기자 foru@sisafor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