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해먹고 이야기하니 좋지…”

무작정 찾아간 향우노인정 스케치
열악한 환경 … 관리 및 지원 시급

2005-10-10     이덕희 기자

   
▲ 향우노인정
동구 신안동 동대전성결교회 맞은 편. 하천가에 모시옷 입은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다. 그 중 가장 젊은 할아버지가 이리오라고 손짓한다. 좁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방 입구다. 점심식사를 하기엔 이른 시간인데, 부침개 등 음식이 차려져 있다. 월례회 날이다. 아침부터 나와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한 모양이다. “대부분 혼자사는 노인네들이야. 두내외가 살거나 자식들하고 사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한 10시쯤부터 5시까지 모여서 점심 해먹고 얘기하고 그러지 뭐.”

집에 혼자 있는게 뭣해서 나오기는 하는데 이곳에 보살펴줄 누군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노인들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살림을 꾸리고 있다. 사무업무를 맡고 있는 유재남(68·소제동) 총무는 “월회비 3천원과 시지원비 22만원으로 운영된다. 대부분 식비로 들어가고 목돈 들어갈 일이 있으면 십시일반 돈을 모은다”고 말한다. 주방 입구에 놓인 냉장고도 얼마 전 중고로 구입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선뜻 돈을 내놓았다. 꾸준히 나오는 인원은 30여명 정도. 매일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공간이 좁아 한자리에 다 앉지는 못한다. 한차례 먹고 나가야 기다렸던 사람들 차례가 온다.

30여년도 더 된 건물이니 그럴 만도 하다. 화장실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임연적(74·대동) 부회장은 “방 한 칸 넓은 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노인네들 다 모여도 앉을 자리가 없어….” 선풍기 세 대로 여름을 나고 있는 향우노인정 사람들. 냄새나는 화장실과 낙후된 주방시설 등은 이제 적응할 만하다. 부엌에 가보니 살림살이는 엉망이고, 천정 구석 거미줄에 벽지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한 할머니는 “우리 딸이 뭐라고 해. 시설 깨끗한 데 두고 왜 여기 오냐고. 그러면 시설 좋은 것보다 사람 좋아서 온다고 말하지”한다. 넓은 방에 운동시설과 샤워시설까지 잘 갖춰진 경로당이 있는 반면 향우경로당은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채 10년 이상을 지내왔다. 올 해 85세인 박경훈 할아버지는 증손자까지 4대가 함께 살지만 모두 휴가중이다. “나이먹어 어딜 따라가. 물가에 가도 노인네 있으면 불편하지. 안 따라다닌지 오래됐어.”

집에 혼자 남겨진 노인들은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다. 최소한의 지원비로 하루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이들에게 실제적인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 전문인력을 투입, 구역별 후원체계를 정립하거나 재정운영에 도움을 주어야 함은 물론 정기적인 건강검진 등 혜택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할머니 여의고 경로당 찾아
최영민 할아버지

구석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73세인 최영민 할아버지. 대동에 살고 있는 그는 2년전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후 경로당을 찾게 됐다.
전셋집에 혼자살고 있는 최영민 할아버지는 “집에서는 혼자 밥을 해먹는데, 여기 오면 같이 먹을 수 있어 좋다. 가끔 회원들이 반찬을 해주어 고맙다”고 한다. 젊었을 적 페인트공이었던 그는 저금해둔 돈이 없어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나이들어 뭐 돈 쓸 일이 있나. 그렇지만 기회가 있다면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장기, 화투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