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려가 본 8.31 부동산 대책

2005-10-10     편집국

정부가 8월 31일 발표한 ‘부동산 종합대책’의 파도가 아직도 거세게 들락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일부 부동산 투기세력의 이익이냐 대다수 국민의 이익이냐를 놓고 선택하는 전쟁”이라고 하니 조용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거부(巨富)로써 지금까지도 상성(商聖)으로 높이 추앙받고 있는 범려라면 작금의 부동산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재미있는 가설(假說)이 아닐 수 없다.

범려가 당대의 노자(老子)나 그의 주변인을 통해 도가적(道家的) 사상을 체득했을 것이라는 내 상상력이 맞는다면 사회의 빈부격차 해소와 양극화 현상의 치유를 위한 일련의 부동산 대책에 대하여 찬성의 입장을 보였으리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더 강력한 대책이 나오지 못함을 개탄했을 수도 있을 노릇이다. 그렇다고 노련한 상인인 그가 가만히 앉아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요, 그런 규제의 틀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재능을 발휘하여 치부(致富)는 계속되었으리라. 그를 상고해 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선 대표적으로 타오르는 송파구 거여·마천동 지역을 생각해 보자. 범려라면 이 현상을 과연 정상(正常)으로 보았을까? 정상이 아니라면 범려는 가지 않았을 것이며 보다 슬기롭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전쟁에 권도(權道)는 늘상 있는 일이지만 승패는 혜안(慧眼)에 있다. 오늘의 승리가 적의 미끼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 사세에 따라 눈높이의 수위를 조절하는 지혜가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빛나게 한 것이니 무작정 부화뇌동할 일은 아닌 듯 싶다.

다음은 이번 8.31 대책의 근간인 부동산 세제 개편과 관련해서다. ‘세대별 합산과세’등 이른바 투기수요를 억제한다는 취지의 세금정책은 당대의 거부인 범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범려가 세금이 무서워 유예기간 내에 부동산을 다 처분하거나 위장전입 등 불법행위를 통해 재산을 은닉하려 했을까? 물론 처분 후 재테크 방법이 여러 가지로 산재해 있겠지만 부동산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달리 처신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자라면 그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분명히 주었을 것이다.

“나는 감히 주인이 아닌 손님의 입장이 되며, 한 치를 나가기 위해 한 자를 물러난다. 다시 말하면 하지 않고도 하며, 팔이 없이도 물리치고, 군대가 없이도 지켜내며, 무적(無敵)의 상황으로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 이것이 곧 용병이다.”

금번의 종합 대책의 골간은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에 있다. 범려라면 서민을 위하면서도 자신의 이해득실을 용의주도하게 살필 인물로 서민들의 공적(公敵)은 결코 되지 않았으리라. 그는 기회에 편승하여 시세차익을 노리는 작은 부자에 만족하지 않고 당장은 손해 같더라도 훗날 누구나 우러러보는 큰 부자가 되는 길을 생각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으리라는 생각이다. 큰 부자와 작은 부자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대국(大局)을 읽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면 전월에 말했듯이 일기쓰기를 통해 일일삼성(一日三省)하는 생활을 습성화 하는 것이 혜안을 갖는 요체일 것이다.

임현덕 스피드뱅크 대전충청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