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상징성, 성공축제의 핵심
정 경일교수(건양대학교 문학영상학과)
| 콘텐츠의 상징성, 성공축제의 핵심 |
|
|
|
|
|
|
|
|
|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다. 매년 전국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각종 축제는 모두 1000여가지나 된다. 일찍이 중국인들조차 크게 인정하여 그들의 오래된 역사책인 삼국지 속에 기록해 두었을 정도로 음주가무를 즐겼던 민족이니 우리가 축제를 즐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듯싶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각각 특색을 가지고 진행한다고는 하지만 1000여 가지나 되는 축제들이 과연 얼마나 진정한 축제로서의 의미를 가지는지는 무척 궁금하다. 마침 지난 연말 문화관광부는 이들 1000여개의 축제 가운데 각 시도에서 추천한 축제들을 심사해 그 중 내용과 형식 훌륭한 축제를 선정해 2007년도 문화관광축제로 발표했다. 문화관광부는 좋은 축제를 ‘최우수 축제’와 ‘우수 축제’, ‘유망 축제’ 등 세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최우수축제에는 충남 대천의 ‘보령머드축제’ 등 7개, 우수축제는 전남 함평의 ‘함평나비축제’ 등 9개가 선정되었고 강원도 인제의 ‘인제빙어축제’ 등 17개가 유망 축제로 선정됐다. 모두 33개 축제가 선정된 이번 심사 결과, 충남에서 진행되는 축제는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보령머드축제’와 우수축제인 ‘금산인삼축제’, ‘강경젓갈축제’, 유망축제인 ‘한산모시문화제’, ‘아산성웅이순신축제’, ‘천안흥타령축제’등 6가지가 선정되었다. 그런데 좋은 축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축제를 말할 때 흔히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이야기한다. 근대적인 인간을 표현하는 대표적 용어인 이 말은 대략 “유희적 인간”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종래 일반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생각하는 인간”이나 “사회적 인간” 또는 “도구적 인간”등의 개념이 인간을 이성적이거나 산업적 존재로 인식하였던 것에 비하여 호모루덴스에 와서 드디어 인간은 노동과 생산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와 질을 생각하는 존재로 변모시켜 인식하게 되었고 이러한 놀이의 총체가 바로 축제이다. 그러므로 축제에는 우리들의 삶을 풍요하게 해 줄 다양한 콘텐츠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축제기획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어떤 콘텐츠를 축제 속에 담아내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축제의 하나인 ‘함평나비축제’를 눈 여겨 보게 된다. 전남 함평은 나비축제가 개최되기 이전에는 한번도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고장이다. 함평에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관광지가 전혀 없다. 역사, 문화 유적지도 변변한 것이 없다. 함평군청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화재를 검색해 보아도 여타 지역이라면 한 두개씩 있을 법한 사찰 한군데조차 등재되어 있지 않다. 요즘 흔히 쓰는 용어를 빌리면 하드웨어적 문화콘텐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약점을 딛고 일어선 함평 나비축제의 성공은 결국 상징의 승리이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관광상품, 축제로 활용할 만한 아무런 유형자산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함평이 만들어낸 것은 상징 속에 포함된 콘텐츠의 활용이었다. 현대사회의 탈도시적 친환경적 이미지를 적절히 읽어낸 함평군민들은 나비를 통하여 함평을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마을의 이미지를 창출해내었다. 나비가 내포하는 상징성을 문화비평가인 최민성은 환경파괴로부터 친환경으로의 회귀, 기계문명사회로부터 자연으로의 회귀, 팍팍한 현실로부터 환상적인 이상세계로의 회귀라고 읽어내고 있다. 나비를 보러오는 관광객의 63%가 가족단위라고 한다. 나비는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매개로서의 역할, 가족 간의 사랑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서의 상징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나비축제의 성공요인은 나비의 상징성을 정확히 읽어내어 기계문명에 지친 현대 도시인들이 무의식 속에서 내재되어 있던 이상향의 모습을 구현해 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매년 설날과 추석 귀향 인파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고향에 대한 추억들, 농촌을 얘기할 때 늘 따라다니는 고향 이미지, 노랑나비와 호랑나비를 잡으러 온 들판을 쏘다니던 어릴 적 이미지는 도시인의 내재적 감성의 세계를 자극한 것이다.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회사 로고(CI)에 나비를 차용한 것도 함평 나비축제의 상징성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다. 그러면 우리 지역 축제 속에 담겨있는 상징성은 무엇일까? 우리 지역 축제의 콘텐츠는 아직도 너무 직설적이다. ‘머드’와 ‘젓갈’, ‘모시’와 ‘흥타령’, ‘성웅 이순신’...이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성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자료의 강렬한 개성이다. 한 여름 바닷가의 강렬한 진흙, 늦가을 저물녘의 짭쪼로운 젓갈의 향은 축제의 특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이들이 우수축제로 선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축제가 계속 이 단계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좀 더 좋은 축제로 나아가려면 이들 축제에서 문화적 전통을 찾아내고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하여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젓갈의 이미지는 전통에 머물러 있고 이순신은 충효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산 모시가 지향하는 현대적 웰빙이미지는 바람직하지만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 지역축제가 신나고 알찬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미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아온 지역축제의 획일성, 상업성, 오락성에서 벗어나 나름대로의 ‘상징성’을 발굴하고 새로운 ‘가치’와 ‘전통’을 창조할 때 우리의 축제는 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모든 축제 현장마다 비슷비슷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풍물과 오락거리들 외에 과연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