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일렉트론 이화성 사장
여성경제인의 날, 산자부장관상 수상
지역의 한 여성 중소기업인이 지난 날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국내 최초로 수도용 밸브와 부품일체를 개발하여 연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 지역경제에 화제가 되고 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양수리 350-3번지에 위치한 ‘화성일렉트론’의 이화성(46)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 그녀는 지난 달 ‘여성경제인의 날’에 신제품개발 및 지역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인으로 인정받아 ‘산자부장관상’을 수상한데 이어 ‘중기청장상’과 지난 7월 ‘여성발명의 날’에도 동상을 수상하는 등 한꺼번에 상을 휩쓸어 동종 업계로부터 부러움과 함께 주목받는 경제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이화성 사장은 대전 유성 출생으로 유성초등학교를 거쳐 주경야독하며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마친 또순이이다. 건축업을 경영하던 故 이은조 (80)씨의 2남 3녀 중 둘째딸로 태어난 그녀는 당시 시대만 하더라도 여자는 그렇게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진학의 의지가 없었는데 부모님조차도 별로 강요하지 않아 상급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야학당에 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낮엔 건축업 하시던 아버님 일을 도와 일하고 밤엔 야학당에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학교 전 과정을 모두 마친 그녀는 20살 되던 해 부친께서 지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친구의 중매로 의류업을 하던 남편과 만나 일찍 결혼하였다.
임대공장 얻어 ‘화성화학’이란 상호로 독립
남편을 도와 바느질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그것도 잠시, 의류업이 사양산업으로 점점 쇠퇴해가는 바람에 문을 닫고 1994년 사출 성형사업을 하는 남편 친구를 찾아가 두 달 동안 그 밑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혀 그 해 4월 15일 ‘화성화학’ 이란 상호로 독립하였다.
달랑 집 한 채 있던 것을 전세 놓아 보증금 5백만 원을 가지고 월 50만원 짜리 임대공장을 얻어 공장 한 켠에 임시 살림집을 마련하고 새 출발을 시작하기 위한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당장 일을 하기 위해선 기계·설비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데 4천만 원이나 하는 금형기계를 당장 구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금형기계전문회사인 ‘동신유압’을 찾아가 당시 책임자인 홍종성 소장에게 다짜고짜 기계를 할부로 달라고 부탁하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꾸없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거절당한 줄 알고 낙심하여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 생각없이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홍소장이 다가와 “할부로 줄 테니 이제 그만 걱정하라”는 말을 듣고 믿기지 않아 정말이세요? 정말이시죠? 재차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그렇다”고 말하더라는 것.
나중에 뭘 믿고 그 비싼 기계를 선뜻 내주었느냐고 물어봤더니 “꼭 성공할 것 같아 주었다”는 말에 얼마나 목이 메었는지 모른다면서 당시 홍 소장의 특별한 배려가 없었다면 오늘의 ‘화성일렉트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화성일렉트론’ 공장 신축하고 제2의 도약 선언
그 후 1997년 삼성전자 1차 협력회사인 신흥 정밀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전자회사의 이미지에 맞게 ‘화성화학’을 ‘화성일렉트론’으로 상호를 개명하고 본격적인 제품생산에 들어갔다. 돈이 벌리는 대로 재투자 하여 생산 라인도 9대까지 늘리고 종업원도 30명까지 증원하는 등 점점 회사규모를 갖추어 나갔다.
IMF 한파에도 불황 없이 보냈지만 이 후 삼성전자가 생산라인을 값싼 노동시장인 중국 등 외국으로 옮기면서 협력업체들도 하나 둘 도산하거나 업종을 바꾸는 것을 보고 우리도 자체브랜드를 가지고 독자적인 제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무한경쟁시대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2000년 영동대학교와 산·학·연 컨소시엄을 구성, 4건의 실용신안과 특허를 획득하고 10억의 자본금을 투자하여 ‘애플정수기’란 독자적인 상표로 자체 정수기를 개발하여 시판에 들어갔다.
그러나 메이커시장이란 한계에 부딪쳐 3년 만에 두 손 들고 말았다.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커 한동안 멍하니 넋 놓고 지내면서 방황도 해보았지만 더 이상 그대로 주저앉아 절망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다시 재기의 몸부림을 쳤다. 이 사장은 남편과 의논하여 마지막으로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와 땅을 처분하여 만든 자금으로 2001년도에 현 소재지인 충북 옥천군. 옥천읍 양수리 350-3번지 소재에 대지 1400여 평에 연 건물 400평의 공장을 신축하여 제2의 도약을 선언하고 다시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신제품 개발로 해외 바이어들의 문의 쇄도
이런 이사장 부부의 끊임없는 시장조사와 제품연구 결과 지난 2003년 1월 폴리에틸렌 하수도 이음관소켓을 개발했는데 이 제품은 수작업으로 하던 기존의 제품을 금형화하여 만든 것으로서 시공이 간편하고 수밀성이 좋다는 장점이 인정돼 지난 2004년 5월 특허를 획득한 화성일렉트론의 주력상품이다. 특히 기존의 전기융창식 이음쉬트의 문제점을 개선한 분리형 EF 소켓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소재로 이용해서 내구성이나 내열성, 강도, 등 모든 성능이 기존의 동 밸브를 능가하는 제품으로서 수도용 밸브와 배관부품 일체를 국내 최초로 화성일렉트론이 개발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PE 이음관을 비롯, PE 상하수도관 전기융착 이음관, 합성수지관 융착형 분활 연결관 3건과 전기융착새들관과 보일러용 온수분배기 2건 등 총 5건을 개발하여 현재 특허와 실용신안을 출원·등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모든 설비시설을 갖추고 올 목표인 20억원의 매출시장을 겨냥해 제품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화성일렉트론’은 포천시청과 양주시청에서 발주한 공사현장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주택공사 등 각종 국내 건설회사에서도 주문이 밀려와 현재의 시스템으로선 공급물량을 맞출 수 없어 사전 예약 없인 제품 공급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 등에서 바이어들의 문의도 쇄도하고 있어 조만간 외국에도 수출할 계획이어서 시설확충이 시급한 실정인데도 이 사장은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 사장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18억원이란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하여 가정용 보일러 부품도 개발하는 등 현재 실용신안 특허 등록 20여건이 등록 및 출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에도 적극 앞장서 활동
지난달엔 신제품 개발과 함께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제 9회 경제인 날’을 맞아 산자부장관상을 수상한 이화성 사장은 중기청장으로부터도 모범기업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동시에 안았다.
돈만 있으면 벌기 쉬운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는 제품생산을 위해 연구개발비로 그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래의 국가 경제를 위해 이 방법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확고한 경영철학을 밝히는 이사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경영 속에서도 대전 라이온스클럽과 옥천로터리클럽, 여성경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틈나는 대로 의료봉사, 이·미용봉사, 소년·소녀 장학금지원, 불우이웃돕기, 독거노인 가정에 정수기 무료 설치 등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에도 적극 앞장서 활동하고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21세기 우량기업으로 성장, 국가경제에 이바지 하고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찾아 늘 도전하는 정신을 가지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이 사장은 “돈은 쓸 줄 아는 사람이 벌어야 비로소 돈의 가치가 있다”면서 “그래서 앞으로 돈을 벌면 힘들게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을 위해 농촌의 주택부터 개량해 줄 생각”이라고 소신을 피력한다.
한편 이화성 사장은 “그동안 한눈팔지 않고 열심이 일한 대가를 인정받은 것 같아 이제야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더욱 제품개발에 힘써 21세기 배관재 피팅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하여 국가경제에도 우리 화성일렉트론이 견인차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 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