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느티나무 산책길

시청 북길

2005-09-02     편집국

“이 친구야 좀 천천히 걷게나. 왜 이렇게 밀치고 그러나!”

 거리를 단지 이동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시키게 되는 것이 도심의 일상이다. 대전도 지하철이 들어서게 되면 5~ 10분 단위로 이동하는 지하철 노선 시간표에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지고, 남들보다 먼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도시로 꿈틀거릴 것 같다. 원도심의 일상과는 조금 다른 둔산 신도시의 거리를 찾아본다.

‘둔산타운’ 둔산은 이제 열살박이 신도시다. 98년 정부청사, 시청이 입주한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둔산 신도시는 격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서로, 남북으로 시원하게 뚫린 큰길. 한밭대로, 대덕대로가 있으며 정부청사와 시청사를 중심으로 바둑판처럼 만들어진 도시다.

둔산은 반듯반듯하다. 격자형의 도로체계가 그렇고 길가에 들어선 건물들이 그렇다. 복잡한 도시가 만들어져가는 중심에 느티나무숲이 조용히 손짓한다. 도시는 나이를 먹으면서 시민들의 삶이 그 안에 녹아질 때, 비로소 진정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때가 묻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둔산은 온통 새 것이다. 막 포장지를 뜯은 새 물건처럼…. 그래서 무엇을 만들기가 조심스러워지는 곳. 그럼에도 날마다 새로운 건물이 지어져가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끼며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어야 한다. 아픔이 있고 어두움이 있으며 애환이 있는곳. 자동차 차창너머로 보여지는 풍경으로서의 모습보다는 그 안에서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으로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도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보행자가 자신의 몸을 통해 공간을 탐색하는 것, 그것은 대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땅의 움직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기 속에 느껴지는 풀내음, 싱그런 바람소리, 시원한 그늘, 길바닥의 돌, 흙을 만진다. 꽃잎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본다. 도심 속을 한 번쯤은 편안히 걷고 싶다. 그러나 도심속을 걷는다는 것은 긴장과 경계의 연속이다. 인도를 걷다보면 자전거가 휙 지나간다. 가끔은 인라인 퀵보드까지…. 어쩌다보면 아예 인도가 없어져 자동차 옆을 걸어가게 되기도 한다.

도시의 길을 걷는 사람은 흔히 유쾌하지 못한 소리의 공간 속에 놓여지게 된다. 소음이 무제한으로 발생하는 삭막한 도심에 혼자 걷기 좋은 길이 둔산에 있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며 편안함이다. 혼자 걷다보면 이미 혼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고 정겨운 이야기가 들린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대전시청사 북문으로 나오면 길 건너에 시청북1길과 시청북2길 사이에 느티나무 숲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주 길게 늘어선 숲길 속의 시원한 그늘이 아스팔트 위의 찜통더위 속 우리를 유혹한다. 대로변을 건너야하는 불편함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건널목을 건너보자. 차도들 사이에 있는 숲길인지라 사람들을 모으는 조그만 광장이 있는데, 붉은 블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광장이 건널목과 이어져 있다. 건널목을 건너 광장에 들어서니 음이온이 쏟아질 것 같은 깊은 숲길이 보인다. 숲길 끝에 보여지는 밝은 햇살이 아른거린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산책을 하고 가던 길을 그냥 돌아오지 않고 다른 길의 정취를 느껴보도록 배려한 흔적이다.

어느 쪽으로 가볼까? 느티나무가 5m 간격으로 빼곡히 서 있어 하늘이 가리워진 공간을 걷는다는 것은 사물의 본래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인식이며, 세상사의 맛을 찾아줄 수 있는 우회적 수단의 하나다. 보행로는 산책의 온갖 리듬을 수용하는 열린 공간인 것이다.

느티나무로 도시의 자연공간을 나누고 사람들을 숲길 속으로 인도한다. 가지 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작은 나무들로 도시의 일상을 막아놓았다. 간간이 나무 틈 사이로 자동차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길을 걷다보면 들어온 길과 반대편 끝이 눈부시게 보이는 시원한 그늘 속 벤치에 앉아보고 싶어진다. 

나무벤치에 걸터앉아 천천히 이리저리 둘러본다. 모과나무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감나무 꽃사과나무가 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느티나무 아래로 지피식물들이 있다. 노랑 창파가 하늘거리며 가던 발길을 붙잡는다.

산책로 중간에 작은 광장이 있고 또 이어지는 숲길. 두 갈래 길이 이어져 느티나무 사이로 보여지는 오고가는 이들의 한가로운 모습 속에서 산책의 참맛을 느낀다.

시원한 그늘속의 어두움이 익숙해 질 무렵 멀리 숲길 끝에 샘머리공원의 탁트인 광장이 보이고 나뭇잎사이로 언뜻 정부청사건물이 보인다. 도시의 축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시청북길(느티나무길)은 대전시청사, 서구청, 경찰청, 특허법원, 둔산우체국, 교육청, 세무서 등 행정기관의 빌딩숲 안에 숨겨진 보석같은 공간이다. 시청사건물 위에 올라가 정부청사를 바라보면 이 길의 상징적인 의미를 확연히 느끼게 될 것이다.

세계의 유수한 신도시들이 격자형 도로망체계 속에서 랜드마크적인 건물을 중심으로 상징축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시청북길은 둔산타운의 중심축에 놓여져 있다.

둔산타운을 지도에서 보게 되면 보래매공원부터 시청-시청북길-샘머리공원-광장-정부대전청사-대전문화예술의전당 그리고 갑천을 건너가 엑스포과학공원으로 이어지는 남북의 축이 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축을 중심으로 지역의 성장에 대한 질서를 부여하며 가로의 운동체계를 형성한다. 둔산의 중심축에 도로가 아닌 공원길을 조성한 것이다.

현재는 자동차중심의 원활한 교통체계로 인해 이곳마저 차 안에서 지나쳐 보는 숲길로 인식되고 있지만 2007년 지하철이 개통되면 시청 역에 하차하여 공공기관을 찾는 이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게 할 명소가 될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곧장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도심 속의 숲길이 보이고, 느티나무가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곧게 뻗은 산책로의 끝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시원한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 간간이 들리는 자동차소음 그 속에서 도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 쫓겨 사는 직장인들이 도심 속에서 한가로이 누려보는 산책시간. 점심을 먹고 나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 숲길 속을 천천히 발길 닿는대로 걷는 약 10분간의 이 산책이 새로운 하루의 힘을 충전해 줄 것 같다. 분주함과 삭막함 속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시민들의 삶의 지친 어깨를 두드려주는 느티나무의 움직임이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청년으로 자라나게 될 둔산 신도시의 일상을 상상하며 지긋이 눈을 감는다.

시간이 흐른 뒤 이곳에도 실개천이 흐르고 그 위에서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벤치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는 할아버지의 웃음. 숲길을 걷다가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분수 앞에 머물러 폰카를 눌러대는 젊은이들의 환한 미소. 사람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시청 앞 느티나무 숲길.

이 곳이 포근한 휴식처로 자리잡아가길 기대해 본다.

건축사사무소 로이건축 ☎ 042-485-4156

 글·사진 / 서동구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