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장인 손길로 구워낸 맛 ‘일품’
충북 유일의 제빵·제과 이종화 기능장
신지식인상 수상과 함께 기능장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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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 출신으로 부친 이기우(74) 씨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종화(49) 기능장은 직업군인인 부친을 따라 부산 광안리로 이사해 유년시절을 보내고 다시 춘천으로 옮겨 춘천 봉의초등학교를 거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이 기능장은 불우한 환경 때문에 더 이상 학업을 정진할 수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님 친구의 소개로 춘천에 있는 한 작은 제과점에 취업하면서 일찍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제빵·제과기술을 익히며 낯선 타향에서 살다보니 순간순간 정붙이며 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유년시절 자신이 자란 추억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경험없이 시작한 사업에 빚까지 짊어져
이곳저곳 수소문 끝에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 입구에 있는 ‘동명양과’에 취업하기로 결정한 이 기능장은 1976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부산으로 내려와 5년간 근무하면서 제빵·제과부문에서 최고의 명장(기능장)이 될 것을 굳게 다짐하며 기술을 익히는데 전념한다. 때맞춰 당시 서울 ‘고려당’에 근무하던 친구가 “지방에서 무의미하게 살지 말고 이왕 시작했으면 대도시에서 기술을 배워 그 분야에서 최고의 기능장이 되어보라”고 권유해 1981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술을 익히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근무하는 동안 틈틈이 시간을 내어 교회에 나가 봉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이런 이 기능장의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춘천의 한 권사님이 “이제 장가갈 때가 되었다”면서 지금의 아내인 김선아(48)씨를 중매해 주어 결혼을 하였는데 결혼하고 보니 좀더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란다. 그래서 그동안 저축해둔 돈을 찾아 아무준비 없이 의욕만 가지고 제과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술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이 충동에 의해 뛰어든 제과사업은 1년도 안돼 투자한 돈 일부도 회수하지 못한 체 모두 허무하게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일부 빚까지 지고 말았다. 이처럼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는 이 기능장이 감내하기엔 그 상처가 너무도 크고 깊었다. 그러나 아픈 상처를 붙잡고 언제까지 주저앉아 슬퍼하고만 있을 여유가 그에겐 없었다. 그동안 고생만 해온 아내와 철모르는 어린자식이 눈에 들어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이 기능장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내어 일어섰다. 마침 속초에 있는 ‘거북당’에서 기술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선불 을 받는 조건으로 그는 다시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
아내의 눈물겨운 내조 속에 거머쥔 기능장 자격증
항구도시인 속초에서 근무한지 5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앞만 보고 열심히 산 대가로 이 기능장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생활의 안정도 찾아갔다. 제빵·제과기술도 늘어 이 분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더 이상 남의 밑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속초에서 ‘도널드베이커리’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다시 제과사업을 시작하며 15년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그런 과정에서 지난 1995년 서울국제빵·과자경기대회에 참가하여 특수 빵 부분에서 동상을 수상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기술을 인정받았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능장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가족과 의논 끝에 사업장을 아내에게 맡기고 전문수업을 받기위해 199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자신의 이 같은 결심에 대해 “아내가 아무 불평 없이 쾌히 승낙해 주었던 일과 사업에 실패하여 부엌도 없는 단칸 삯 월세방에서 4년간 고생하면서 말없이 참고 견디며 인내해 준 아내의 깊은 사랑은 평생 살면서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였다”면서 만약 “그런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은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으며 살아온 결과 2000년 8월 1일 국내 최초로 오징어 빵을 개발한 동기로 신 지식인상을 수상하한 이 기능장은 자신의 직종에 대한 긍지를 더욱 확고히 굳혔을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인 2001년 12월 17일 여섯 번의 도전 끝에 제빵·제과 기능장시험에 합격하므로 마침내 그토록 소원하던 자신의 꿈을 이룬 현실을 만끽하며 아내와 함께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이 시험은 기능사 및 기능대학 기능장 과정 이수자가 11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필기시험과 8시간에 걸쳐 치러지는 실기시험은 체력 소모가 커 도전하기 힘든 분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찾은 청주
그 후 한국기술대학교에서 직업훈련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면서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의 꿈을 이룬 이 기능장은 작은 항구도시인 속초에선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20년의 속초 생활을 청산한다.
그리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교우의 권유로 서울과 가까운 청주로 본사를 옮겨 한 달간의 준비 끝에 지난 2003년 12월 22일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542번지 부영10차 아파트상가 102호에 고유브랜드인 ‘도널드베이커리’와 ‘이종화 기능장의 집’이란 상호로 제2의 창업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당시 “아무 연고도 없이 청주를 선택하고 내려온 것은 사실 모험이었다”고 말하는 이 기능장은 “막상 이곳에 와서 2년간 살다보니 자신과 너무 잘 맞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며 자신의 후회 없는 선택에 대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도널드베이커리’의 제품은 모양과 디자인부문에서 매우 독창적이고 그 맛 또한 일품으로서 기존의 제품과 차별화를 둔 것이 특징이다. 주요 제품으로는 크림치즈와 찹쌀을 섞어 모양을 만든 찰떡 고구마 빵과 화 과자, 그리고 아몬드 분말을 반죽하여 여러 가지 과일, 꽃, 동물 등을 만든 화려한 모양의 마지팬케이크가 있고 팥, 녹차, 호박, 포도, 살구, 사과, 오렌지, 레몬 등을 이용하여 만든 기능성 양갱이등이 있다. 특히 카레, 잡곡, 옥수수크림, 흑임자로 만든 멕시칸브래드는 지방분해와 치매예방에도 매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호두와 곡물을 섞어 크림치즈와 함께 만든 호두바게트는 그 맛이 아주 단백하고 깊은 맛이 있으며 케이크부문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여 일반제과점에서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다양한 모양을 갖추고 있어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푸드뱅크’사업 전개
개신교(주중교회 집사)에 다니는 이 기능장은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병아리와 달걀모양으로 만든 빵을 선보여 이곳을 찾는 고객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런 톡톡 튀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장인의 손에서 빚어지는 구두과자 등 다양한 제품들은 거의 작품에 가까워 고객의 눈을 사로잡으며 구매율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솜씨는 입소문에 의해 차츰 알려지면서 내수·증평을 비롯한 청원군, 진천군 그리고 충주와 대전까지 지역을 초월하여 단골고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20여 평의 1층 전형매장과 지하 50평의 공장에서 9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그중 4명의
전문기술자들은 끊임없는 신제품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이 기능장은 “지금은 비록 무료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중이지만 앞으로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이 꿈”이라면서 “현재 충청권 대학에서 강의 섭외가 들어와 있어 곧 그 꿈이 이루어질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다.
천성이 선한 그는 속초에서부터 ‘푸드뱅크’ 사업을 전개해 왔는데 대다수 다른 곳에서는 팔다 남은 제품을 주지만 이 기능장은 직접 만든 것을
주어 더욱 귀감이 되고 있다. 푸드뱅크사업도 교회의 장로님과 결의하여 공장시설을 동사무소 복지관에 갖추고 자원봉사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여 빵을
직접 만들어 독거노인들이나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한 300여명의 이웃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실시해 오고
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부부로 인정
청주에 내려 온지도 불과 2년 밖에 안돼 아직 자리 잡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천성 때문에 청주소년원과 청주교도소, 평화선교복지회 등에 정기적으로 직접 빵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또 용암동 지역 내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찾아가 빵과 과자를 전달하고 위로하며 사랑을 전하는 이종화·김선아 부부는 부창부수로 서로 같은 가치관속에서 믿음 생활을 통해 소외된 불우한 이웃을 대상으로 사랑을 나누는 데에도 결코 인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는 지인들은 한결 같이 “인생을 참 아름답게 산다”며 칭송이 자자하다. 특히 이 부부의 외모에서 풍기는 여유로움과 넉넉한 모습은 마치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다가와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의 마음까지도 푸근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