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는 여인 (40대 주부 실종사건)

청주흥덕경찰서 오창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사 이배근

2007-03-19     이배근

충청뉴스 독자 투고 청주흥덕경찰서 오창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사 이배근

버스를 기다리는 여인 (강외면 40대 가정주부 실종사건)

하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을 정리할 때 쯤이면 
유독 누군가가 그리워집니다.
지난 겨울의 끝자락을 마지막으로 들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찾아온 당신의 집 앞에서 나는 이렇게 멍하니 서 있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당신이 대문을 지긋이 열며 얼굴을 내밀것만 같은데, 오늘도 헹한 바람만이 세월의 낙엽을 몰아 수돗가에 쌓아놓습니다.

주인 잃은 우편물이 대문에 부고(訃告)처럼 걸려있고, 집배원의 오토바이는 동네 어귀를 바쁘게 돌아나갑니다.
당신이 신던 검은 구두가 소복처럼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뜰팡위에 나란히 올려져 있는데,“아줌마”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나올 것만 같은 느낌은 나만 갖는 환상인가요?

딸보다도 살가운 며느리를 애타게 그리던 시어머니는 끝내 하얀 눈이 내리던 지난 겨울 아침 당신을 찾아 하늘로 떠났습니다.


살아생전 꼭 한번 보고 싶다던 애절한 소원을 이루지 못했으니, 저승으로 가는 길 또한 편할리 있을라구요?

당신이 돌아오지 않던 그날 이후!
당신이 그토록 예뻐하던 손녀가 벌써 두돌을 지나 병아리처럼 아장거리고, 믿음직스런 장남은 전역을 하여 아버지의 곁에서 당신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이렇듯 당신이 가져야 할 사랑, 누려야 할 행복이 온전히
당신의 집안에서 자라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어젯밤엔 당신의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잘 지내냐”며 오히려 나의 안부를 묻는데 나는 한동안 대답을 못했습니다.
이일 저일을 찾아 당신 없는 아픔을 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지만 모든게 맘같지 않다며, 그러다가 넋나간 사람처럼 말을 잊었답니다.

악하고 모진사람 같았으면 벌써 몇 번이고 경찰서를 찾아 “내 마누라 살려내라”“범인을 잡아달라”고 울부짖으며 떼를 썼을텐데, 천성이 착하디 착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오늘도 멍한 눈으로 이곳 저곳을 헤메다가 지쳐
잠이 드는 사람입니다.

지난번 언론에서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대구 개구리소년의 공소시효 만료 얘기로 떠들썩 했습니다.
잔인한 범죄자의 죄책을 묻지 못하고 또한 피해 가족의 원한을 풀지 못해서야 어찌 법치국가의 경찰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엔 피눈물속에 묻혀가는 진실도 있나 봅니다.
행여나 당신도 이런 전철을 밟게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당신 가족에게 죄스런 마음이 앞섭니다.

당신이 떠난 지 어느덧 2년 1월!
당신의 손때가 묻어있는, 청원군 강외면 들녘 당신의 집앞에 이렇게 계절은 다시 옷을 갈아 입습니다.

실오라기 같은 단서를 찾아 현장을 누비던 근성있는 형사의 내뿜는 담배연기와 긴 한숨소리가 들려오고, 담너머로 인정을 나누던 이웃 아낙들의 혀를차며 던지는 푸념섞인 넋두리에 그저 막연한 희망만 기대할 뿐입니다.


“내가 꼭 찾아드리겠다”며 두손잡아 위로를 건낼 때, 당신의 남편께서 내 손에 쥐어준 웨딩드레스 입은 당신의 사진은 아직도 낡은 수첩속에서 환하게 웃고있는데......
“꼭 좋은 소식 있을 거라고, 믿어달라고” 그렇게 자신있어 하던 나도 이제는 가슴으로 울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도 어느 지천을 떠돌다 서러움과 원통함에 지쳐 이슬 맞고 잠을 자는 것은 아닌지?
당신을 찾아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의 남편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매일 아파할 당신을 두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내가 있어 더욱 미안합니다.

아직 살아만 계신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지만 설령 그것이 아니라면 부디 육신을 거둬 당신의 가족품에 잠들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당신이 서성이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이곳!
당신이 타야할 버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오가고, 무정한 사람들은 지나 가는데,,,,,,.
아무일 없는 듯 다가올것만 같은 당신의 모습은 오늘도 보이
질 않네요.
정말 가엾고 가여운 불쌍한 당신이여!

아!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