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토막 유머가 주는 교훈
이미 늦었어요,웃기는 놈이 더 나빠,그럼 꼭 가야겠군
한토막 유머가 주는 교훈 01
이미 늦었어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쉿! 아들아 조용히! 밥 먹을 때 떠들면 복 달아난다.”
식사후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그래, 아까 하려던 말이 무어냐?”
“이미 늦었어요. 아까 아버지 국에 파리가 빠져있었어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식구 모두가 감기에 조심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인천에서 친구가 왔다며 저녁 마다 나가더니 결국 감기에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또 늦는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기에서 딸아이의 심한 기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순간 역정이 나서 ‘너 그렇게 네 멋대로 하려면 그 친구와 아주 나가 살아!’라고 소리치려다 잠시 숨을 고르고 감정을 자제하며 말했습니다.
“너 그 기침 소리에 온 식구가 걱정하는데 일찍 들어와야 되지 않니?”
딸아이의 코울림 심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 미안해요. 오늘도 회사 일이 늦게야 끝날 것 같아요.”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요즘 늦어진 것은 회사일 때문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딸아이와 대화가 없었던 겁니다.
같은 집안에서 같은 솥밥을 먹는 식구라도 서로와 대화가 없다면 남남이 사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방의 생각과 생활상태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대화가 없는 가정에서는 부부간이라도 서로를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서로의 입장을 모르니 생각의 차이가 커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런 가정에서는 서로 자기의 입장만을 고집하게 되고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을 원망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서운한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되어 심한 부부 싸움을 하고, 부모의 작은 꾸중에도 자식들이 가출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가족이란 공동체는 깨질 수밖에 없겠지요.
가족간에 단절된 벽이 생기기 전에 생활 속에서 늘 대화하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상에서 겪고 있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청소년들의 관심사인 연예 스포츠 이야기나 어른들의 정치 경제 이야기까지 틈 나는대로 이야기할 기회를 갖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가족 서로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 합니다.
가정의 풍성한 대화는 가족 간에 생길수 있는 문제를 미리 막아주는 예방주사가 될 것입니다.
- 한토막 유머가 주는 교훈 02 -
웃기는 놈이 더 나빠
하루는 선생님이 튿어진 바지를 입고 오셨다.
그것도 모르고 선생님은 뒤로 돌아서서 칠판에 문제를 열심히 적고 계셨다.
학생들은 자기들 끼리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선생님이 돌아서서 소리를 쳤다.
“계속 떠들고 웃는 놈도 나쁘지만, 웃기는 놈이 더 나빠, 누구야?”
“언 놈인지 당장 나와!”
우리 어른들은 때때로 아이들의 입장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화부터 내며 아이들을 꾸짖는 경우가 있습니다.
며칠전에 퇴근하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화분이 엎어지고 흙과 물이 범벅이 되어 거실 바닦이 엉망이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아빠가 온줄도 모르고 황급히 화분을 세우고 흙을 주워담고 있었습니다.
평소 덤벙대는 아들녀석이 또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나는 잠시 보면서 이참에 딱끔하게 혼을 내서라도 아들 녀석의 이 조급한 성격을 고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경호야! 또 일을 저질렀구나.”
“너 그 덤벙대는 버릇 못고치면 늘 실수하며 살다가 큰 사고 한번 치고 평생 고생할 수도 있다.”
“ 너 정말 걱정된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벌떡 일어서며,
“ 아빠 이번엔 제가 아니라구요! 제대로 알고 야단치세요.”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중풍으로 왼쪽 팔다리를 잘 못쓰시는 어머님께서 화분에 물을 주시다가 그만 미끄러져 이지경이 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확끈하고 아들에게 미안합니다. 전후 사정도 모르고 성급하게 꾸중한 내 조급한 성격을 자식이 닮도록 가르쳐준 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조급한 성격 탓에 우리는 일상에서 별것 아닌 일에도 가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부터 쌓인 감정이 있다거나 선입관 또는 나만의 도특한 성격 때문이라고 하며 감정 만을 앞세우는 경우입니다.
즉 조급함이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되고, 그 결과로 상황은 예기치 못한 어렵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지내 놓고 보면 ‘당시 그렇게 흥분하며 대응할 필요가 없었는데‥‥’하는 아쉬움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아쉬움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숨이 달려있는 화급한 일이 아니라면 좀더 여유를 갖고 생각하여 행동한다면 우리 인간사의 매듭이 좀더 부드럽게 풀리지 않을까요?
- 한토막 유머가 주는 교훈 03-
그럼 꼭 가야겠군
한 시골 사람이 서울 가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하자, 서울 가서 망하고 온 친구가 근심스럽게 말한다.
“서울은 물 한모금 마시려해도 돈이 드는 곳이라네. 신중히 생각하게.”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꼭 가야겠군. 물 한통만 팔아도 먹고 살 수 있을 테니까.”
며칠 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의 병문을 갔습니다. 운이 없어 무면허 화물차에 치었는데 보상 받기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욱이 평소에 겁이 많고 소심한 친구라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낙담하고 있을 친구의 모습을 생각하며 입원실을 찾아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 양발을 모두 깁스하고 꼼짝 못하고 누워있음에도 표정이 아주 밝았습니다. 예상 밖의 상황에 같이 간 한 친구가 한마디 했지요.
“ 어라 이 친구보게. 하체는 엉망인 것 같은데 상체는 전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체는 엉망이지만 다행히 머리를 안 다쳐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본인이 그토록 편하게 말하니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우리들은 둘러앉아 환자와 가벼운 농담도 섞어가며 반시간 넘게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희망적인 환자의 표정을 보며 우리는 저마다 쾌유를 비는 덕담 한마디씩을 해주고 왔습니다. 병문안 와서 친구들 만나 한바탕 즐겁게 떠들고 놀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앞으로 몇 달은 지나야 겨우 걸을 수 있고 그 후에도 몇 개월은 재활 치료를 받아야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 친구는 전혀 낙담하는 기색 없이 밝아 보였습니다. 오히려 새롭게 결심한 앞으로의 삶에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드려 삶에 의욕을 잃거나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려움이 있어도 크게 상심하지 않고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궂은 날이 있으면 개일 날도 온다”는 생각으로 세상사를 낙관하고 고통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이들이 있어 사회는 보다 밝아지고, 세상은 보다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