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대학가, 그러나 자생력 키워야
궁동 로데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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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오 거리는 한때 ‘압구궁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유명한 거리였으며 그때만은 못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장소다. 필자도 학생시절인 20대의 대부분을 이 거리와 함께 보냈고, 지금은 모교의 강단에 서는 것을 핑계로 이 거리를 자주 거닐고 있다.
궁동 로데오 거리의 이용층은 상당히 젊다. 거리에 들어서면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젊은이의 찢어진 청바지가 어색해 보이지도 않고 또, 웬만큼 짧은 미니스커트에는 눈길도 가지 않는다. 오히려 정장차림의 내가 훨씬 어색하게 느껴지며 터줏대감 행세를 해도 될 만큼 오랜 시간을 보내온 그 길에서 언제부터인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덧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서운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 거리를 바라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과거에 관한 기억 가운데 중요한 장이 되고 있는 이 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거리가 소멸하지 않고 지속되어 오랜 전통을 갖기 위해서는 거대한 규모의 기관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의 자립적인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전자의 경우 단시간 내에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제공받는 소비인구 이상으로 거리가 성장할 수 없으며 심지어 기관의 이전 혹은 폐쇄에 의해 그곳의 운명이 결정되곤 한다.
이에 비해 후자의 경우에는 물론 성장과정에서 도태되는 거리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거리의 생성과 성장이 더디고 어려운 만큼 자생력이 뛰어나 전통이 있는 거리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실 로데오 거리는 인근 대학교로부터 거대한 소비인구를 제공받으며 급속도로 활성화 되어 지금에 이르렀지만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고 그 속에 속한 상인들은 불황을 탓하며 울상을 짓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불황에 있는 것 같지 않으며 단지 예정된 수순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인근 대학으로부터 제공받는 소비인구를 과신하고 자만하며 자신의 몸집을 너무 비대하게 키운 탓. 사실 대학 학기 중에는 어느 정도 북적거리지만 방학 동안에는 거리가 한산해져서 어떤 때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로데오 거리가 생존하고 더욱 성장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제한된 소비인구에 맞추어 몸집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다. 전자를 택한다면 더 이상 이 주제를 논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후자를 택한다면 기능적 측면과 공간 구성적 측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기능적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면 현재 소비 일색으로 구성된 기능을 커뮤니티, 교육, 체육, 취미, 문화 등의 다양한 기능으로 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각기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인구를 유입하게 되고 이는 곧 소비기능의 활성화에 밑거름을 제공하며 거리를 성장시키게 된다.
대학로라는 말의 의미가 대학생만의 ‘게토’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필요하듯이 거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도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로 언급한 공간구성적 측면이란 정말 쉽고도 어려운 이야기이다. 우선 거리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공간과정을 우리는 ‘통로’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통로’라는 단어는 ‘거리’ 혹은 ‘길’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인가? 두 가지 단어는 서로 비슷한 의미인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한 개념적 차이를 갖고 있다.
우리의 유년시절을 회상해 보면 우리는 동네 골목길 안에서 많은 놀이들을 해온 것을 기억 할 수 있다. 그 당시 골목길은 통로인 동시에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어른들에게는 이웃과의 교류가 가능한 장소로 노인들에게는 휴식의 장소가 되어 다양한 역할을 해 왔다. 만약 그 당시의 골목길이 반듯하게 정리된 일직선의 형태였다면 과연 그런 행위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골목의 어느 부분에서 구슬치기를 했을까? 옆집 아주머니는 골목의 어디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을까? 동네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던 곳은 어디일까?
아마 길에서 약간 후퇴된 어느 집의 대문 캐노피 아래라든지, 정자나무 아래, 골목이 꺾이면서 약간 넓어진 장소, 언덕으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의 아래, 기대서기 좋게 튀어나온 굴뚝이나 담장 등 차도 통행하지 못할 정도로 좁던 그 길에서 기억에 떠오르는 장소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골목길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통로로 구성된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성격의 ‘장소’들이 서로 중첩되고 연속되며 이루어진 선형의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성격이 거리의 활력과 큰 관련을 갖게 되는 것이다.
거리는 이동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생활의 장이 되어야 한다. 어떤 거리가 다양한 장소로 구성되어 있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굳이 공간 형태를 분석해 보지 않아도 거리의 사람들만 지켜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무름 없이 이동하고 있으면 그곳은 통로로서의 성격이 강한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머물며 대화하고, 휴식하고 있으면 그 거리는 장소성이 강한 공간인 것이다.
물론 로데오 거리를 골목길로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간판만이 줄지어 매달려 있는 획일적이고 선형적인 공간을 조금씩 개선하여 장소성이 있는 공간들로 구성해 보자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기능적, 공간적 변화는 이 거리가 자생력을 갖기 위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다.
이 거리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나는 정말로 이 거리를 사랑한다.
/ 허경은 소장
충남대 건축학과 겸임교수·시공건축
☎042-256-75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