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했고 열심이었던 적이 언제냐?” 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할 것 같다. 고교시절을 또래와 달리 유난스럽게 보낸데 이어, 졸업을 하기도 전에 이미 사회로 뛰어들게 된 나의 인생이기엡. 학력고사를 보고난 다음날부터 레스토랑 DJ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나는, 군 복무기간 3년을 제외하곤 주위 사람들이 ‘나이를 생각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 재학시절과 졸업 후 지금까지도 정말 유난히 바쁘게 세상을 살고 있다.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청춘을 군대에서 보내신 엄부시하에 2녀 3남중 막내….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아니었기에 당황했지만 진지하게 묻는 그의 표정에 진실되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고민이야. 가고 싶은 데가 있긴 한데, 성적도 그렇고… 고민만 하고 있어.”
“그럼 너 성악전공해서 음대 가라. 내가 1학년 때부터 레슨받으면서 성악 공부하고 있는데 네 목소리 들으면 질투가 나거든!”
내가 방송반이라 스피커를 통해 나가는 목소리는 지겹도록 들었겠지만, 말소리와 노래는 엄연히 다른데 그런 중대한 주문을 하는 친구가 이해되지는 않았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보문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차가 다니는 큰 길까지는 별로 민가가 없었고, 밤늦게 자습하다 학교를 내려오면서 나는 가까운 친구들과 동네가 떠나가듯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큰길까지 내려왔었다. 어느 정도 기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성악가 지망생이 있었고, 그 소리에 반한 친구가 그때 날 당황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나와 형들이 많았던 터라 피리(리코더)와 하모니카를 불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2학년 때 음악선생님께 끌려 개교기념행사에서 합창한 것과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문화원 산하로 있었던 고교 합창 동아리인 ‘목요음악회’회원이었던 것이 음악 인연의 전부였다.
그 다음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친구가 이끄는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 친구의 레슨 선생님께 테스트를 받았다. 그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풍금이 아니라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음악시간에 배웠던 가곡을 낯설게 불렀고, 잘한다는 칭찬과 지금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말을 들으며 더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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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홍보팀 김상균 팀장의 예술마당 코너가 연재됩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관심바랍니다. 김상균 팀장은 남대전고등학교와 충남대 예술대학 음악과를 졸업했으며, 대전MBC Reporter, 충남대 예술대학 음악학부 동문회장 및 총동문회장, 대전시립합창단 상임단원, 사) 한국음악협회 대전시지회 총무이사, 대전동구여성합창단 상임지휘자, 대전오페라단 사무국장, 한국공연예술학회 홍보이사를 역임했다. 또한 D、art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초대단장을 맡았으며 대전예술기획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홍보팀장과 사)한국음악협회 대전광역시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