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전’을 영어로 하면?
‘파전’을 영어로 하면?
  • 편집국
  • 승인 2006.03.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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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가 영어를 만났을 때

대화의 시작은 머리를 부드럽게 하는데서 비롯

“알싸하게, 거시기 해 부리자.”
“오늘 거시기를 확실히 해부리장께요.”

언젠가 영화 한편으로 뜬금없이 거시기 열풍이 한창인 적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 거시기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도 적지 않았다. 큼직한 CD player를 옆구리에 차고 음악 듣는 것만도 눈에 띄던 게 바로 어제일 같은데 이젠 수백 곡을 구워 삶아서 작은 MP3 player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니는 이 첨단의 IT시대에도, 언어란 구워삶기가 진짜 어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거시기’를 영어로 하면 뭐가 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화 ‘친구’의 DVD 영어 자막에 아주 정확하게 나와 있다. 극중에 장동건이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묻는다.

“니 밥 묵었나?”
그러자 유오성이 아주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래, 묵었다. 니도 밥 묵었나?”
이를 친구의 DVD 영어 자막에서는
Mr. Jang : “니 밥 묵었나?” (How are you?)
Mr. You : “그래, 묵었다. 니도 밥 묵었나?” (Fine, thank you. And you?)

하나의 우스운 에피소드 같지만 필자는 그 자막을 보면서 번역자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하는 작은 번뇌를 느꼈다.

우리가 한국어를 영어로 또는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어 놓을 때 늘 생기는 갈등의 시초는 교과서적 참과 거짓에 얽매여 있다는 게 아닐까? 말이란 것은 문화가 묻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100원 집어넣으면 100원짜리 왕사탕이 나오는 자판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거시기를 ‘whatchamitcallit’ 이라 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you-know-what’ 이라고 하며, 번역가 집단은 ‘it’이 가장 적합한 어휘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말은 번역해도 ‘그냥 거시기 해부릴거구만’의 그 뜨뜨미지근한 ‘거시기’의 심정은 대응되지 않는다. 

늘 당부하고 싶다.
‘A가 A이고 B는 B다’라는 우리의 꽉 막힌 머리를 풀어줄 때 비로소 영어의 첫걸음은 시작된다고….  앞으로는 누가 파전을 영어로 뭐라고 하냐고 하면 “양파, 파 그리고 해산물이 들어간 한국식 팬 케이크 입니다(Korean style pancake with onions, green onions and sea food)” 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답해라. 

“You will get to know after you eat” (먹어보면 알 것이다)라고.


필자 이현경(해리)은 누구? ▲ 이현경

1996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1999년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 기자 및 칼럼니스트였으며 IBM 실리콘 밸리 지사에 근무했다.
2004년  사이언스 타임즈 기자였으며 러플린 총장과 국내 최초로 인터뷰 했다. 조선일보에서 러플린 교수의 연재글을 번역, 정리하는 등 많은 번역과 인터뷰 활동을 통해 한국인의 영어공부 문제점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현재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의 수석비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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