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세종시 괴화산은 신도심에 우뚝 솟은 해발 201m의 나지막한 산이다. 주변에는 원수산, 전월산, 황우산, 비학산, 꾀꼬리봉이 자리하고 있다.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 석삼리, 장재리, 석교리 경계에 있던 괴화산은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세종시 반곡동, 소담동, 집현동에 둘러싸인 도심 속의 산이 됐다.
괴화산(槐花山)의 이름은 남면 세거리(지금의 세종호수공원 일원)에서 괴화산을 바라보면 밤에도 환하게 불이 커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괘등형(掛燈形) 명당이 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금남면 석교리(지금의 반곡동 일원) 주민들이 음력 10월 1일 괴화산 산신에게 지내는 산신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하나는 조선 시대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 한 승려가 “마을의 각 어귀에 탑을 세우고 산신제를 지내면 마을이 편안할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구전이 전한다.
이때부터 산신제를 지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괴화산 산짐승에 얽힌 보은 설화이다. 아군과 왜군이 싸울 때 괴화산에 사는 짐승들이 밤에 몰래 내려와서 왜군들의 무기 끈을 모두 끊어 놓아 아군이 승리하도록 하였고, 그 후로 괴화산의 산짐승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석교리가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로 편입되면서 괴화산 산신제는 중단되었다고 한다.
또, 괴화산 금덩이와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두 가지 설화가 있다. 하나는 괴화산 ‘청승모랭이 금점굴’에 얽힌 설화이다.
옛날부터 괴화산 기슭에는 멍석만 한 금덩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한다. 꿈속에서 금이 있는 곳을 점지받아 이곳에 깊숙이 굴을 파고들어 가서 금을 캤다.
사람들은 금점굴이 매우 깊기 때문에 굴속에 무서운 것이 있다고 여겨 함부로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착한 사람이 굴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금덩이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금괴가 묻혀 있다는 ‘절재(골짜기) 금 단지’ 설화이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백제 유민들이 지금의 반곡동에 정착했다. 한 주인이 하인을 시켜 나당연합군의 동태를 살피게 했는데, 나당연합군이 주인을 잡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하인들은 인근으로 흩어져 집을 짓고 농지를 개간하면서 주인을 보호했다. 하인들은 주인이 죽게 되자 금덩이를 주인의 무덤에 함께 묻어버렸다. 금덩이를 묻은 후로 무덤이 있는 괴화산은 밤이면 빛이 났다고 한다.
세종시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이름을 따온 도시이다. 세종시(시장 최민호)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마을 이름 등 주요 시설 명칭을 대부분 전래 지명이나 아름다운 순우리말로 붙이고 있다. 괴화산을 둘러싸고 있는 반곡동 수루배마을, 소담동 새샘마을, 집현동 새나루마을의 명칭을 예로 들어본다.
반곡동 수루배마을의 ‘수루배’는 이 지역 전래명칭 중에서 ‘수루배들’을 활용했다. ‘수루배들’은 반곡동에 있는 들판 이름이며, 수로 가에 논배미가 있는 들을 의미한다. 반곡동은 원래 지명인 반곡리를 따서 만들었고, 평야와 낮은 구릉지로 이루어진 지형에 있는 마을이 소반과 같다 해서 유래한 지명이다.
소담동 새샘마을의 ‘새샘’은 이 지역 전래명칭 중에서 ‘새샘골’을 활용했다. ‘새샘골’은 석삼리에 있는 골짜기이며, 새로 판 샘이 있는 골짜기를 의미한다. 소담동의 이름은 ‘생김새가 탐스럽다’라는 의미로, 풍요로운 주거지역이 되기를 바라며 지어졌다.
집현동 새나루마을의 ‘새나루’는 이 지역 전래명칭 중에서 ‘새나루터’를 활용했다. ‘새나루터’는 봉기리에 있는 나루이며, 지형이 고양이 모양이라 ‘고이나루’라 했으나, 그 후 나루터의 위치가 변하여 약간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새나루’라 했다. 집현동의 이름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집현전에서 따왔다.
괴화산의 등산코스는 들머리가 9곳에 달할 정도로 다양하다. 어느 산행코스를 선택해도 산세가 험하지 않고 완만한 짧은 거리라 30분 이내에 괴화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등산로 입구 주변에는 주차 공간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비좁은 편이다. 대중교통(BRT 버스)으로 접근이 가능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책연구단지, 수루배마을 등산로를 추천한다.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면 국책연구단지(천주교대전교구청) 또는 솔빛숲유치원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하면 된다.
세종시 명산을 기행하는 모임(세종명산한바퀴)은 20일 아홉 번째 산행지 괴화산을 찾았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무더운 한여름 날씨이다. 우리 일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한국개발연구원(KDI) 부근에 있는 등산로 입구에 집결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로 입구에 설치한 계단을 오른다. 곧이어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 들어가니 이내 온 몸이 시원해지면서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준다. 숲속 등산길을 쉬엄쉬엄 오르면서 정겨운 매미 우는 소리를 듣는다.
법원과 검찰청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법원과 검찰청 방면으로 내려가면 작은 정자가 있다. 이곳 정자에 서면 저 멀리 전월산과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괴화산 정상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 두 번의 계단을 오르니 어느새 해발 201m의 정상에 도착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오른 지 30분 정도 걸렸다. 산 정상에는 탁 트인 조망이 없어 아쉽다.
정상 중앙부에 원형으로 축조한 석축유구가 눈길을 끈다. 석축유구는 출토유물로 보아 고려시대 제의(祭儀) 시설 또는 산성과 관련된 망대(望臺)로 추정된다고 한다. 정상석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세종시의 특산물 조치원 복숭아를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복숭아 꿀맛이 넘쳐흐른다.
괴화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로 입구에 맨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벗어놓은 신발들이 여럿 보인다. 최근 들어 괴화산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걷는 어싱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어싱(earthing)이란 우리 몸을 땅 또는 지구 표면과 직접 맞닿으면서 걷는 맨발 운동을 말한다.
괴화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등산로는 크게 세 갈래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방면, 국책연구단지(천주교대전교구청) 방면, 수루배마을 6단지(유아숲체험원) 방면이 그것이다.
하산할 때는 등산로를 따라 곧바로 내려가거나, 산 중턱에 있는 둘레길을 돌아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괴화산 등산코스 중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수루배마을 6단지 구간이 가장 긴 코스이고 괴화산 산행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이 구간에서는 집현동 새나루마을과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바위 조망터를 만날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숲놀이터가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수루배마을 6단지 방면으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유아숲체험원(솔빛숲유치원) 갈림길을 만나고 곧이어 수루배마을 6단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인근 대중교통(BRT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거나 수루배마을 3단지 삼성천 부근 공원에 조성한 태양 12경 시비를 잠시 관람해도 좋다.
이곳에서 금강을 사이에 두고 보이는 전월산(월봉)은 10경에 해당한다. 태양 12경은 반곡동에서 출생한 문인 화잠 진세현(1854~1928)이 반곡동 주변의 자연과 마을 풍경을 묘사한 한시 12수이다. 2022년 10월 반곡역사문화보존회가 병풍 모양의 태양 12경 시비를 건립했다.
우리 일행은 하산하면서 바위 조망터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산 중턱에 있는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국책연구단지(천주교대전교구청) 방면으로 내려갔다.
산행 초반에는 막바지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 좀 힘들었으나 무더위와 일상의 피로를 싹 날려주는 힐링 에너지를 충전해서 좋다. 전체 산행 거리는 2.6km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괴화산 산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