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근 배우 조진웅이 스크린 속에서 소환한 홍범도 장군은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독립전쟁의 핵심, 봉오동·청산리의 영웅. 영화 속 그의 모습은 장엄했고, 관객들은 숨을 삼키며 그 시대를 따라갔다. 하지만 연구자의 마음속엔 감동과 함께 묵직한 허탈감이 남았다. 왜 우리는 이토록 뒤늦게 홍범도를 다시 기억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역사를 영화에서야 되살려보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여전히 그 이름을 논쟁거리로만 소비하는가.
홍범도는 한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의 인물이다. 독립군을 이끌고 만주 벌판을 누볐으나,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환영받지 못했고, 영웅답지 않은 쓸쓸한 결말을 맞았다. 우리가 오늘 감동했다면 그 감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기억을 감정으로 소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역사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가 끝나면 박수도, 기억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의 이름은 최근 더욱 복잡한 정치적 논쟁 속에 던져졌다. 정확한 사료 검증 없이 의견이 진실을 대신했고, 누구는 영웅이라 부르고 누구는 논란이라 규정했다. 역사가 정치의 장식물이 되는 순간, 학자의 가슴은 무너진다. 영웅을 소환해놓고 정쟁의 칼날 위에 올려놓는 것이 과연 역사인가. 아니면 우리는 또 한 번 기억을 소모하고 있는가.
조진웅의 열연은 분명 대중에게 화두를 던졌다. 그러나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영화는 출발점일 뿐 도착점이 아니다. 장군의 일대기를 감동적으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홍범도는 어떻게 독립군을 조직했고, 봉오동·청산리에서 어떤 전투 전략을 세웠는가?
그는 왜 소련으로 향했고, 어떤 정치적 상황에서 연해주를 떠나야 했는가? 만년의 외로움과 디아스포라 독립운동가의 현실은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을 묻지 않는 감동은 결국 지나간 눈물에 머문다. 영화 한 편으로 역사를 배웠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역사를 불러오지만,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대중은 감동하고 떠나고, 기록과 연구는 여전히 책상 위에 남는다. 학생들은 여전히 연도를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잊는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허탈하다. 그 허탈함은 ‘왜 우리는 아직도 이 장군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홍범도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중심축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는 그를 통해 배워야 한다. 영웅은 기념비가 아니라 질문이다. 그의 삶에는 전투의 영광뿐 아니라 망명의 고독, 내부 분열, 사상적 긴장이 존재했다. 논쟁이 아니라 연구와 토론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역사교육은 살아난다. 조진웅은 장군을 다시 우리 앞에 세웠다. 이제 다음 역할은 우리의 몫이다.
영화관에서 눈물을 훔쳤다면, 책장을 넘기고 사료를 열어야 한다. 답사해야 하고, 교실에서 토론해야 하며, 학생들에게 한국 독립운동의 복합적 층위를 설명해야 한다. 감동은 소모품이 아니며, 기억은 체험과 공부를 통해서만 역사로 남는다.
홍범도 장군은 더 이상 과거 속 인물이 아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싸웠으나 조국에 묻히지 못한 사람이며, 오늘 우리가 이어 써야 할 미완의 서사다. 그를 영화로만 기억하면 추억이고, 삶 속에서 이어가면 그것이 역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