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스승이 만들고 스승은 제자가 만든다
제자는 스승이 만들고 스승은 제자가 만든다
  • 편집국
  • 승인 2006.06.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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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생II

음악과에 입학한 사람 중 독학을 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고3학년 2학기부터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레슨비가 없어 독학으로 성악을 공부해 한 학기 동안 3번의 학생음악 콩쿨을 치렀다. 첫 번째는 예선통과, 두 번째는 3등, 세 번째는 성악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비록 독학이었지만 노래잘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세 번의 콩쿨에서 이정도의 성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면 내면에 자만심이 생길만하지 않을까?

   
▲ 김상균 /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홍보팀

학력고사 이후 실기시험을 약 한달 앞두고, 문화원 산하 고교합창동아리인 목요음악회 정기연주회를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합창연습이 끝나고 동아리 선배라고 하며 군복 입은 사람이 인사를 한다. 한양대학교 성악과 재학 중 입대를 한 선배가 휴가기간 중 정기연주회 연습을 하는 후배들을 격려해주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성악전공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들의 성화에 못 이겨 노래를 한 곡조 뽑았다.

성악을 전공하기위해 대학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는 변훈 작곡의 ‘명태’라는 노래를 굵직하고 매력 있는 바리톤 목소리로 부르는 그 선배가 정말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그때 그 선배의 노래하는 모습과 선율이 25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선할 정도라면 그때의 느낌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들의 환호성에 답한 선배는 이윽고 성악과에 진학하려고 준비하는 후배가 있느냐고 물었고, 느닷없는 질문에 손을 들었던 나는 선배의 집에 이끌려가게 되었다.

“레슨 선생님이 누구지?”라는 선배의 질문에 “없는데요”라고 답했다. 순간 눈동자가 커지면서 성악과에 진학하려는 애가 레슨을 안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어이없어 했다. “그래 일단 어떻게 노래하는지 들어보자”면서 피아노앞에 앉아 ‘후루꾸’(약식) 반주를 하기 시작했다. 난 여태 해왔듯이-남들에게 칭찬을 받아왔듯이-준비하고 있던 입시 곡을 불렀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선배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고함이다. “이게 음대를 가려고 하는 놈 노래냐?”,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레슨을 받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레슨비가 없어서 그렇다고 변명을 둘러댔지만 음대에 진학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될 수없다며 다그친 후 자기는 다음날 귀대를 해야 하니까 어찌할 수 없고 누구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선배 집과 시내 정반대편에 있는 어느 집까지 택시를 태워 데리고 간다.

“아무개 형~”이라 부르며 어느 한 사람을 소개했다. 이 어이 없는 친구를 데리고 온 경위를 설명하고는 노래를 다시 불러보란다. 노래가 끝나고 생전 처음 보는 두 사람에게 똑 같은 욕을 얻어먹어야했다. 더군다나 선생님으로 소개받은 그 분에게는 내쫓기다시피 하며 집을 나서야만했다. “내일부터 오려면 오고 말라면 말아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젊음은 역시 다르고 난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 시절부터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다.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휴가병 선배와, 당시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재학 중이었던 어린(?)선생님에게 노래를 하기 시작한 후 최초로 혹독한 평과 지독한 욕을 한꺼번에 먹게 되었고 내쫓기듯 그 집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야릇한 기분이었다.

한참 혼이 나고 나오면서도 왠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좋았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사실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이미 취해야 할 방향을 잡고 있었다. 실기시험까지는 약 한달이 남아 있었고 그 한 달 동안 난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집 문턱을 넘어섰다.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레슨을 받는 도중 쪼그려 뛰기도 했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대나무자로 손가락을 맞아가며 레슨을 받았다. 난 그분에게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분 역시 열심히 하라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영양보충을 해야 한다며 이것저것 사주셨고 실기시험 날은 자신의 돈으로 택시를 태워 학교에 가게 했다. 대기실에서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앉아 컨디션 조절을 해주는 헌신으로 인해 그저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덕에 대학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고교시절 음악선생님에 이어 두 번째로 음악인으로서 기획자로서 지금의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단순히 레슨비를 바라지 않고 지도를 해줘서라기보다 자신을 따라하는 방식의 레슨방법이 아니라 제자의 장점을 찾아주기 위한 레슨방식도 그랬고, 남을 위해 자신의 달란트를 헌신하는 것도 그랬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신의(信義)라는 것을 알게 해준 장본인이 아닌가 싶다.

제자는 스승이 만들고 스승은 제자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분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보답은 삶속에서 신의를 저버리거나 이기적인 생활로 실망을 시키지 않아야한다는 것에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제자로서 스승의 위상을 세워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에 가정이 어렵지만 성악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망설이지 않고 지도했던 일도 그렇고, 내 자신이 피곤하더라도 후배들과 학교를 위한 봉사와 희생을 서슴치 않았고, 역시 사회생활에 뛰어들어서도 안티(Anti)적 성향이 강하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직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들춰내면 기분나빠하고 자존심 상해한다. 정작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자존심상해하기보다는 지적받는 것에 더 자존심을 상해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이지만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후의 스승은 무대라고 하듯 결국 예술가들은 무대에서 판가름이 난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누구나 다 낯설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주변인들의 정확한 코멘트보다 더 좋은 조언이 없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관계를 유지해왔던 선후배들과는 서슴없는 대화가 당근과 채찍이 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저마다 자신이 최고라는 우매한 사고보다는 옆에서 기분 나쁠 정도로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소중함과 또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포진해있는 사람들이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하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서슴없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나무랐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전은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입장과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불리하다해도 대의를 위해 향해 설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또 예술인들과 시민 상호간 과감한 비판은 물론 이에 따른 겸허한 수용의지가 만연하다면 명실상부한 문화도시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때로 관심에 의한 비판이 아니라 미움에 의한 비판이라는 위선이 있다 해도 무관심보다는 낫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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