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자폐증)에 걸릴 확률이 통계적으로 낮은 이른바 ‘성별 보호막’ 현상이 강력한 유전자 변이 앞에서는 완전히 무력화된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최초로 규명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김은준 단장이 연세대와 자폐증 유발의 핵심 범인인 ‘CHD8’ 유전자의 기능을 대폭 약화시킨 ‘중증 변이(동형접합) 생쥐 모델’을 세계 최초로 살아있는 상태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 모델을 통해 유전적 변이의 강도가 일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그동안 여성을 자폐증으로부터 지켜주던 생물학적 방패가 부서지며 남녀 간 증상 격차가 사라진다는 유전학적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당초 학계는 CHD8 유전자 한 쌍 중 한쪽에만 이상이 있는 ‘이형접합’ 모델을 연구해왔으나 쥐에게선 자폐 증상이 너무 미미하게 발현돼 한계에 부딪혔다. 변이를 극대화한 ‘동형접합’ 모델 역시 자궁 속 배아 단계에서 전원 사망해 비교군 자체를 만들 수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정화진 박사의 선행 연구(CHD8 N2373K 모델)에서 포착된 성별 차이에 주목, 유전적 배경이 전혀 다른 생쥐 계통을 교배해 혼합하는 역발상으로 모체 안에서 죽지 않고 생존하는 동형접합 변이 마우스 모델을 확보하는 돌파구를 열었다.
가벼운 변이 단계에선 수컷 생쥐만 자폐 행동을 보이고 암컷은 멀쩡했으나, 변이를 강화하자 암수 모두에게서 가혹한 중증 자폐 증세가 발현됐다.
연구팀은 성별·유전자형·연령층이 얽힌 방대한 변수 탓에 통계적 유의성을 검증하는 데 애를 먹었으나 다기관 공동 연구진의 스크리닝을 통해 행동 이상은 물론 뇌 구조 변화, 혈류 저하, 신경 발화 특성을 다층적으로 입증했다.
특히 전사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신경세포 접합부(시냅스) 기능 저하와 RNA 스플라이싱 변이, 미토콘드리아 활성 억제가 유전자 변이 강도에 따라 성별 방어막을 허무는 트리거임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자폐증 환자 중 유독 여성의 비율이 적은 이유를 뇌 회로와 생물학적 메커니즘 수준에서 직접 증명한 최초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연구팀은 후속 단계로 이번 전사체 분석에서 도출된 시냅스 기능 장애와 미토콘드리아 대사 저하 유전자들이 실제 신경 발화 및 혈류량 손실로 이어지는 정밀한 인과 지도를 그릴 예정이다.
김은준 단장은 “중증도와 성별 변수를 결합한 새로운 연구 프레임을 제시한 만큼 향후 획일적 접근을 벗어난 환자 맞춤형 자폐 정밀 치료제 개발의 핵심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