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19로 함께 한 나만의 첫 번째 生
[기고] 코로나19로 함께 한 나만의 첫 번째 生
  • 최형순 기자
  • 승인 2020.11.26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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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 천안지사 김다연 팀장

본 체험 수기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충청지역본부에서 <코로나19, 현장 속 우리의 이야기>를 주제로 질병관리청, 생활치료센터 등 코로나19 방역 지원을 위해 파견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수기입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천안은 2월 말경 줌바댄스와 함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맨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것으로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런 6월말 천안 유량동의 우정공무원 연수원에 국제1 생활치료센터가 생겼고, 우연치 않은 계기로 업무지원을 가게 되었다.

김다연 팀장
김다연 팀장

처음엔 그랬다. 출퇴근도 된다는데 그냥 가서 내 자리 잘 지키고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 되겠지. 그러나 막상 가보니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장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2주간의 숙식은 물론, 행안부와 복지부, 의료인 등 낯선 타인들과의 쉽지 않은 동고동락과 함께 생활치료센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의식주 해결이 고스란히 공단의 역할로 주어졌다. 말이 쉬워 의식주 해결이지 결국은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인 그 역할들을 해내기 위해 우리는 매일을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발이 붓도록 동동거려야 했다.

확진자의 80%이상이 외국인이었던 만큼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아침 7시부터 준비한 도시락에 고기가 들어갔다며 컴플레인을 거는 사람, 도시락 배달 후 못 받았다며 다시 달라고 보채는 사람, 메뉴를 오늘 바꿔 달라고 했다가 다음날은 또 원래대로 달라고 하는 사람 등등의 일들이 반복될 때는 남의 나라에 와서 주는 대로 먹지 않고 요구사항도 많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또 면도기나 핸드폰 충전기, 속옷 등 사소한 필요 물품들을 요구할 때는 이런 것들까지 지급해 줘야 하나 싶어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남의 나라에 일하려고 왔다가 확진자가 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까를 가늠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상황만 탓했으니 얼마나 좁은 소견이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또한, 국내 확진자도 늘면서 대전에 사는 엄마가 먼저 입소를 했고 일곱 살 아들도 입소를 했는데, 아이와 함께 입소한 그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싶어 그 아이에게 색연필과 크레파스, 스케치북을 사서 전해주었고 아이 엄마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그 후 동화책이라도 사서 한 번 더 보내야겠다 마음만 먹었다가 끝내 실천하지 못하고 나왔던 일이 아직도 후회로 남아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사람에게는 씨를 뿌리는 生과 그 씨앗에 물을 주는 生, 그리고 열매를 거두는 生과 그 열매를 쓰는 生으로 이어지는 네 개의 生이 있다고. 그래서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첫 번째 生이 씨를 뿌리는 生이라면 더 많은 용기와 배려로 공단의 높아진 위상에 걸 맞는 사람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우뚝 서야겠다고.

코로나19를 겪으며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다. 위기에서 기회를 얻은 K-방역은 이미 의료의 표본이 되었다. 더불어 공단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저질환 여부 확인으로 경증환자는 생활치료센터로, 위험군은 집중치료 등으로 효율적인 조기치료가 가능하도록 지원하여 사망률을 낮추는 등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 한 곳인 천안의 국제1 생활치료센터에서 나 또한 미흡했지만 역사의 한 발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에 오늘 하루 나만의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리고 넉넉한 품으로 함께 라는 의미를 일깨워준 단장님 외 모든 분들께 감사의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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