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의 동제] 11회(기획) 아산시 기산2통 장승제
[아산의 동제] 11회(기획) 아산시 기산2통 장승제
  • 유규상 기자
  • 승인 2026.03.12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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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아산시 온양5동에는 기산통이 있다. 아산시 이전의 아산군으로 자치단체 이름이 명명되었을 때에는 행정 편제상 기산리로 불리워졌고 기산통은 다시 1통과 2통으로 나누어 졌는데 1통에는 성미, 울바위, 두집매의 자연부락이 있고, 2통은 거리미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기산통을 뒤에서 지탱하고 있는 조산(朝山)역할을 하는 보갑산은 그 정상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온양시내가, 서쪽으로는 도고면, 남쪽으로는 송악면, 북쪽으로는 신창면과 인접하며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전통적인 농촌마을이다.

기산2통 거리미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전래되어 내려 오고 있는 동제는 장승제 혹은 노신제가 있는데 금년도에는 지난 3월 2일(음력으로 1월 14일) 오후 7시에 마을입구의 장승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또한, 거리미 마을 입구(들머리라고도 한다)는 세개의 갈림길이 있고 여기에는 당시 600여 년된 느티나무 고목이 있어서 이 나무를 중심으로 장승에 제사를 지내면서 장승제 혹은 노신제, 노승제라고 하였으며, 매년 음력 정월 열 나흔날(1월 14일) 초저녁에  지냈다고 한다.

느티나무 고목은 정자나무라고도 호칭하였으며, 중심 줄기는 짧은 편이지만 굵기는 어른들 6명 정도가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로 컸고 1960년도까지는 나무와 잎이 무성하게 유지되었지만 이후에 죽기 시작하였고, 마을에서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 마을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목재로 팔아 없어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마을 정자가 세워졌다. 

마을에서는 생기복덕을 가려서 제관과 축관을 정하며, 제관 등에 선정된 사람은 여느 마을처럼  나쁜 생각을 가져도 안되고, 남과 다투거나 부부관계도 삼가고 비린내 나는 음식도 먹지 않으며, 소소한 일체의 일상에서 금기하는 생활태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소요되는 비용은 마을에서 정월초부터 농악을 치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쌀을 1-2되씩을 받거나 제수용품을 마련하였으며 3일 정도 이전부터 장승을 청결하도록 목욕을 시키고, 흰색의 무명천을 엮어서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만들고 숯과 청솔가지, 고추, 한지 등을 골고루  끼운 뒤 정자나무에 묶었다고 한다.

마을 길 양쪽에는 황토 흙을 조금씩 퍼다가 크게 한발 간격으로 10여 무더기씩 만들어 마을에 들어오는 잡귀나 액운을 막는다는 비법으로 운영하였으며, 제사를 지내는 제관들은 찬물로 목욕을 하였으나 점차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온양시내에 나가 목욕을 하고 마을에 들어 오고 있다.

제사에 쓸 제물 중 쌀은 3되 3홉으로 집시루에 백설기를 찌며, 떡 시루의 손잡이에는 실타래를 묶고 통북어 두마리를 꽂고, 양초도 2개 준비하며, 대추, 밤, 사과, 곶감을 준비해 해가 어둑해 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다. 

제사의 순서는 장승 앞에 제상을 펴고 흰색의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제물을 배치하고 병풍을 치며, 촛불을 켜고 제관은 무릎을 끓고 향을 피우며,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제관이 엎드린 상태에서 축관이 축을 읽고 술을 다시 올리고 재배한 다음 소원을 적은 종이(소지)를 태우는 행사를 진행한다.

제사가 종료되면 제물을 음복하고 모닥불을 피우며 풍장도 치면서 마을의 평온과 무병장수와 화합을 도모하는 마을 축제가 된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새로 축문을 쓰지만 1968년도에 마을에서 작성한 오래된 축문을 참고로 하여 축문을 작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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