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34년간 대전 시민들과 함께 한 대전 최초의 쇼핑센터 중앙데파트 건물이 폭파공법으로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74년 건립돼 대전 발전의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중앙데파트 건물은 1990년대 이후 대전 둔산의 신도심 형성으로 인해 상권 등의 약화로 대전시의 생태하천 및 목척교 복원 작업에 있어 큰 장애물이 되면서 철거에 이르렀다.
'원도심 재창조 ‘카운트다운’…아듀! 중앙데파트'를 주제로 8일 오후 4시부터 대전천 선화교 상류 하상주차장에서 열린 중앙데파트 철거 발파이벤트에는 35년의 애환과 추억을 함께 나누려는 듯 3만여 명(경찰추산)의 시민이 운집했다.
행사는 중앙데파트를 역사 저 편으로 보내는 의식으로 시작됐다. 시립무용단은 원도심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던 중앙데파트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살풀이춤으로 표현했다. 개발시대의 흔적을 지우고 친환경시대를 맞이하는 마음이 춤사위에 고스란히 담겼다.
또 소프라노 조정순의 ‘그리운 금강산’과 테너 서필의 ‘이제는 안녕이라고 말할 시간’(Time to say goodbye) 등의 공연에 이어 ‘새로운 희망’을 주제로 흥겨운 웃다리농악이 다가올 희망을 암시했다.
건물 발파는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안전사고를 우려해 예정시간보다 32분여가 지난 5시 18분경에 이뤄졌으며, 중앙데파트가 먼지로 사라지는데 소요된 시간은 겨우 8초였다.

박성효 대전시장은 “어릴적 목척교 아래에서 여름이면 물놀이하고 겨울이면 쌀가마니에 모래를 채워 물을 막고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던 즐거운 추억이 떠오른다”며 “추억과 애환을 함께 한 중앙데파트가 지금 파괴되지만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되찾고 원도심 상권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새삼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란 말이 떠오른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 태어나는 목척교와 주변공간을 물려주겠다”고 덧붙였다.
목척교 주변복원계획 용역을 수행한 우송대 이해욱교수는 “1912년 나무다리로 건축됐다가 1960년 콘크리트교로 바뀐 후 1974년 하천복개공사로 흔적 없이 사라진 목척교를 우너도심 재생의 상징으로 복원하겠다”며 “461개의 콘크리트 말뚝이 박혀있던 목척교 주변이 녹색시민공원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시는 1912년 세워졌다가 하천복개로 사라진 목척교와 주변공간을 2010년 3월까지 복원할 예정으로, 중앙데파트 철거공간에는 역사의 흔적을 표현할 수 있는 시설과 고사분수, 물장구 데크공간 등을, 홍명상가 철거공간에는 시민 문화 이벤트 공간을 각각 조성할 계획이다
또 동구 중앙시장과 중구 으능정이 거리가 공간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은행교를 연육교로 건설할 복안이다.
목척교 디자인은 전문가들이 제시한 3개의 안을 시민 설문조사를 거쳐 최종 결정할 예정으로, 이는 주민 참여형 도시재생의 수범 사례가 될 전망이다.
한편 목척교 주변 복원 후에는 경제적 파급효과 1,870억원은 물론 유동인구 증가에 에 따른 주변상권 활성화와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 기대된다.
이날 철거 행사는 박성효 대전 시장을 비롯한 15명의 발파 버턴 참석자가 참석, 4시 42분에 발파될 계획이었으나 30여분이 지연된 5시 19분에 발파됐다.
중앙데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수많은 대전시민들은 4시 42분 중앙데파트의 안전한 카운트다운을 기원했으나 사전 예고 없이 계속해서 지연되는 시간으로 인해 여기저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또 당초 오후4시부터 5시까지 전면 통제되기로 했었던 중앙로와 하상도로 역시 통제되지 않아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사이 얌체 차량들로 인한, 안전사고의 현장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폭파 현장을 지켜본 시민 최모(36.동구)씨는 “대전을 상징하던 중앙데파트 건물이 사라져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든다. 순식간에 폭파돼 허무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더 좋은 공간이 생기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표했다.
이모(59.서구)씨는 “이 중요한 순간에 시간이 지연되는 것뿐만 아니라 차량 통제까지 되지 않고 있으니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큰 행사에 허점투성이 안전 대책만 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몇 번을 강조해도 과하지 않은 안전문제에 대한 소홀함과 행사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중앙데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위해 끝까지 자리에 남은 대전 시민들의 마음이 빛나던 현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