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한번 와보고 싶었던 이 거대한 땅 아메리카.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려면 컨버터블의 뚜껑을 열고 시속 90마일로
모하비의 덤불사막을 진종일을 달려야만 하는 끝없는 대지.
숨 막히도록 광막한 이 땅에서 난 또 한번의 청소년기를 겪고 있다.
나보다 한 뼘이나 큰 파란 눈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어깨가 축 처지는 신체적 청소년기, 그리고 가슴속의 무수한 생각들이 영어로
걸러지면서 주눅이 들어 하고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어적 청소년기.
광막한 이 땅에 살면서 왜 영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고픈 말을
더듬거리는 머리 큰 청소년이 되어 삭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어차피 떡볶이의 매콤쌀싸한 맛을 알고 나서 영어공부를 하면 아무리 뼈
빠지게 해도 그들보다는 못하게 되어있는데, 그렇다고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머리 속 실무지식은 내가 이들보다 나은데….
언제까지
말 좀 딸린다고 네이티브 앞에서 마음으로만 반항하고 앞에서는 수그려야 하는 건가?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네이티브 보다 못해도 아니 한참 떨어져도 이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한판 붙어라
여기에 그 실전
공식이 있으니 말이다.
1. 짬밥에 기죽지 말라
미국 수퍼마켓에서 한 시간 정도 서 있으면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어린아이는 사탕을 먹고 싶어 죽겠다고 징징 울어대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이게, 사탕 먹으면 이빨 깨지는데 왜 먹을라고 그런 하고 야단을
맞고 끝날 일인데도 그곳 아주머니들은 아이의 키에 자기를 맞추고 왜 사탕을 먹으면 안 되는지, 세월아 네월아 아이가 세뇌될 때까지 얘기한다.
역으로 바꾸어 치면, 어린애도 왜 먹고 싶은지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네이티브와 대화할 때 내가 하는 말을 과연 이 사람들이
알아듣는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불안해도 당당하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중간에 피식하고 비웃지 않는 문화적 장치가 되어있다.
그러므로
좀 어눌해도 기죽지 말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끝까지 자기 할 말을 하면 네이티브는 “이 친구는 말은 좀 부족해도 자기 주장은 있네(This
person is talking what’s on his mind, short of language skill, though)” 하고 한 수
인정해 준다.
2. 언성을 높이지 마라 (Don’t not yell)
가슴 속 응어리를 풀려 해도 말이 뜻대로 나오지
않으면 열이 받아서 큰 소리가 나오는 게 사람심리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언성을 약간이라도 높이면 논리적으로 아무리
맞아도 이미 상대방으로부터 폐인 취급을 받는다.
그러므로 말이 통하지 않아 아무리 답답해도 전화기의 음성녹음처럼 목소리 톤을 고정시키고
천천히 얘기를 하면 최소한 무승부로 경기를 끝낼 수 있다.
단, 화날수록 살포시 미소를 띠면 네이티브는 언어적 약자인 우리를 정신적 강자로
생각하게 된다.
3. Yes와 No만 잘해도 된다
상대는 네이티브이므로 당연히 영어를 우리보다 수십 배
버라이어티 하게 잘 한다. 하지만 말싸움의 본질은 누가 말을 잘 하느냐가 아니고 누구 말이 맞느냐에 있으므로 내 영어가 짧아도 이성을 잃지 말고
침착하게 Yes 할 때와 No 할 때만 제대로 가려도 경기는 쉽게 풀어 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언어능력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니까.
아무리 여기서 책을 수만 권 구워 삶아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보다는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늘 평정심을 가지고 “좀 못
알아들으면 어때?”, “좀 틀리면 어때?” 하는 Relax하는 마음으로 얘기해라. 그러면 상대는 말이 좀 부족하더라도 “이 사람은 확실히
자기주장이 있구나” 하고 여러분의 말에 귀 기울인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다듬을 때 ‘네이티브와의 진검승부’라는 먼 산은 어느덧
가까워진다.
필자 이현경(해리)
1996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1999년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 기자 및 칼럼니스트였으며 IBM 실리콘 밸리
지사에 근무했다.
2004년 사이언스 타임즈 기자였으며 러플린 총장과 국내 최초로
인터뷰 했다. 조선일보에서 러플린 교수의 연재글을 번역, 정리하는 등 많은 번역과
인터뷰 활동을 통해 한국인의 영어공부 문제점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현재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의 수석비서로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