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로 가득한 우주’에서
‘안녕들로 가득한 우주’에서
  • 월간 토마토 이수연
  • 승인 2012.06.29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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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정수리를 뚫고 올라가는 것 같이 높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뱉어내는 소리에 힘이 넘쳐 함께 있는 공간에 가득한 것 같지도 않다. 입안에 소리를 이만큼씩 물고 있다가 조금씩 씹어낸 것을 자근자근 내뱉는다. 그들의 이야기처럼 누군가 한 사람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나른하다.

▲ 아카시아 밴드 모다 김민홍 씨
지난 5월 12일, 북카페 이데 옥상에서 맞은 ‘쑈쑈쑈, 나른 쑈’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주무셔도 돼요.”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은 소규모아카시아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모다 김민홍 씨와 모야 송은지 여사다.
*‘모다’는 @sogyumoda의 뒷말, ‘모야’는 @sogyumoya의 뒷말. 이들의 트위터 아이디이기도 하다.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공연 모습

음악을 하면서 ‘찌그러진 나’를 조금씩 핀다.
김민홍 씨가 이야기할 때엔 그 목소리가 입가 언저리에만 머물다 사라질 것만 같아 온 신경이 거기에 머문다. 공연에 모인 여러분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민홍 씨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비밀’을 이야기한다. 정말 간단한 건데 모두가 인정하지 않거나 모른척하는 그 ‘비밀’은 ‘지금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음악을 하면서 그들은 지금도 ‘찌그러진’ 자신이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이 말하는 ‘찌그러짐’이란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혹은 어떤 사건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정작 ‘본인’을 잃어버린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모두 찌그러진다.

그런 ‘자신’을 피는 방법으로 그들은 음악을 택한 것이다. 아니, 그들이 음악을 콕 집어 다리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음악을 하다 보니, 그것이 그들을 펴주는 것을 ‘느꼈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음악이 모든 이의 ‘찌그러짐’을 펴주지는 않는다. 모든 찌그러진 사람에게는 그것을 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고 김민홍, 송은지에게는 그 방법이 음악인 셈이다. “저도 그렇지만, 은지가 정말 많이 펴진 것 같아요. 딱히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는데, 그냥 마음이죠. 서로 그렇게 펴지는 과정을 보면서 음악을 하는 것 같아요.”

룰루랄라 맘도 가볍기도 하여라 Oh Yeah, alright♪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저녁, 아이들” 수록곡 “룰루랄라”
옥상 무대에 의자를 놓고 앉아 기타를 치기도, 멜로디언을 불기도 한다. 그들의 노래에는 ‘쉼’이 많다. 앨범을 듣다 보면 갑자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눈으로 봤다가 “뭐지?”하고 보면 재생 중이다. 그 여백의 의미를 물었더니 ‘그냥’이란다. ‘그냥 그게 어울려서’란다.

모든 현상에서 이유를 찾아내고 없으면 쥐어짜서 가져다 붙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 ‘업’인지라 순간, ‘아 이걸 어쩌지?’ 하는 표정이었나 보다. 그러니 금세 “원래 우리가 꽉 찬 소리를 극단적으로 안 좋아해요.”라고 이유를 붙여 준다.

그런데 가만히 되짚어 보니, ‘그냥’이 맞다. 그냥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그게 어울리니까.”가 정답이다. 소리로 세상을 채우는 작업만 하다가 ‘그냥’ 비우고 싶어진 것이다.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이해해 버리니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맘이 가벼웠다.

▲ 아카시아 밴드의 공연 모습
음악으로 거짓말은 하지 말자. 아니, 그냥 매 순간 솔직해지고 싶어요
김민홍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따라 밴드에 들어갔다가 거의 학업을 ‘포기’한 수준으로 음악에 매달렸다. 군대에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어 열심히 음악을 만들었지만, 잘 안 됐다.

“그때는 음악을 통해서 유명해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대중적인 음악을 하려고 그런 쪽으로만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신기해요. 아는 거죠. 거짓말이라는 걸. 그래도 그때 정말 공부 많이 했어요. 열심히 했고.”

솔직해지려고 하면서 만든 곡 중 하나가 1집 앨범에 수록한 ‘so good bye’다. 이 음악으로 은지 씨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만 하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베이스 치는 친구”를 좋아하면서 음악을 동경했던 송은지 씨는 스무 살 무렵 음악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기 시작했다. 학교 다니면서 밴드도 하고, 조금씩 ‘취미’처럼 음악에 기웃거리던 은지 씨는 처음엔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하고 회사도 다녀보고, 중간에 공무원시험 보려고 준비도 했다가 결국엔 무대에 서는 사람을 선택했다.

“민홍 오빠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라고 말하는 은지 씨는 고등학교 동창인 가수 ‘호란’의 소개로 민홍 씨를 만났다. “오빠를 보면서, 음악 ‘만’ 하면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다고 느낀 거죠”

그렇게 만난 두 사람에게 ‘소규모아카시아밴드’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가수 ‘호란’이다. 꿈에 ‘소규모아카시아밴드’라는 이름으로 예약이 된 식당에 그들이 갔다며 선뜻 그 이름을 내어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름만 ‘밴드’라고 말한다. 사실은 한 번도 밴드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 아카시아 밴드 송은지씨가 해맑게 웃고 있다.
할머니, 창밖으로 무얼 보세요.할머니, 하루 종일 무얼 하세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일곱 날들” 수록곡 “할머니”
음악만 하면서 산다고 했지만, 그들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하면서 산다. 여행을 다니며 음악을 만들어 앨범으로 내기도 했고(그 앨범이 “일곱 날들”이다.) 앨범으로 묶기에는 방향이 어긋난 것 같은 곡 중 예쁜 곡들을 모아 “저녁, 아이들”이라는 동요 앨범을 내기도 했다.

또 송은지 씨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음반을 내려고 기획 중이기도 하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연 ‘이야기해 주세요.’를 열기도 했다. 이는 송은지 씨와 홍대 여성 음악가들이 함께 만든 ‘릴리스의 시선’이라는 공부모임에서 발전한 것이다.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야기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사회로부터 위로받으신 적이 없잖아요. ‘위안부 할머니’라는 낱말 자체에서 아픔이나 무거움이 느껴지니까 함부로 이야기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으로 풀어내면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면서 할머니들의 아픔을 덜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Dream Is Over 소규모아카시아밴드 4집‘Ciaosmos 챠오스모스’ 수록곡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요. 제목이 무섭죠. ‘Dream Is Over’ 하핫. 설마 진짜 꿈이 끝났다고 하는 거겠습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꿈은 ‘헛된 꿈’이에요. 사람들이 꿈을 이루려고 하는 허튼짓들 말예요

미술가가 되고 싶은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잖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이 미술가잖아요. 근데 우리나라 애들은 그거 되려고 공부해. 하핫. 우습잖아요. 꿈을 이룬다는 게 멀지 않아요. 돈만 이야기하고, 돈을 잘 벌어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다고 하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지금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재청 두 곡을 빼고, 이들이 진짜 마지막으로 선택한 곡은 이 곡이었다. 앨범을 내면서 가장 애정이 담긴 노래가 무어냐고 묻자 당연히 다 좋단다. 항상 다 좋으니까 자신 있게 앨범을 내놓는다고. 수많은 곡이 버려지기도 했다. 아까워서 다시 주워다 쓰려 해도 한 번 버린 곡은 끝까지 재생되지 않더라.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주인공 김민홍씨와 송은지씨
아까워도 계속 버리고, 버려서 추린 곡들이니 맘에 차지 않는 곡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몇 년 후에 예전 앨범을 다시 들으면 ‘아쉽다.’라고 느낀다. 그래서 계속 음악을 하는 모양이라고, 계속 조금씩 아쉬움이 남아서 이러는 모양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지난 해 4월에 발매한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4집 Ciaosmos 챠오스모스는 이탈리아어로 안녕인 ‘Ciao’와 우주를 뜻하는 ‘Cosmos’의 합성어로 ‘안녕들로 가득한 우주’라는 뜻을 가진다. ‘안녕들로 가득한 우주’에서 다음에 또 그들과 ‘안녕’할 수 있길 바란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보컬 송은지 씨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만드는 앨범을 위한 제작비를 후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국민은행 269101-04-099039 예금주 송은지(이야기해 주세요-)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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