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가 부르는 쉬운 노래
이기수가 부르는 쉬운 노래
  • 글 성수진 사진 성수진, 송주홍
  • 승인 2012.12.28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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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설명하는 다섯 가지 넘버

민중가수 리기수. 혼자 기타 들고 노래하는 이기수의 별명 혹은 애칭. ‘물러나라’라는 노랠 불러 붙은 별명인 줄 알았는데, 장난스럽게 나온 것이란다. 기타 치고 노래하며 놀다가, 친구들이 민중가수 같다며 ‘민 중가수 리기수’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운동하셨던 어른들이 들으면 웃기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또 마음에 드는 이름 이다. “뭐, 썩, 괜찮네요.”

삼촌 블루스
: 사람들이 내 노래에 즐거워하는 게 좋다

아직 단풍, 은행잎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가을날, 품이 큰 갈색 가죽 재킷을 입은 이기수가 과학마을축제에 나타났다. 마땅히 준비할 것도 많지 않았다. 기타를 꺼내고,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체크한다. 그리고 바로 생뚱맞게 “삼촌, 삼촌” 부른다. 노래의 시작이다. 평범한 블루스 열두 마디, ‘삼촌, 삼촌 나 치킨 좀 사줘’, ‘이모, 이모 나 로보트 사줘’ 징징대는 가사에 듣고 있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음악에 조예가 있으신 부모님 덕에 이기수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다. 그래서인지 음악을 폭넓게 듣는 편이지만, 고등학생 때는 특히 ‘Deep Purple’에 빠져 지냈다. 대학생이 되면 밴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생이 되어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

작년부터 혼자 기타 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플리마켓에서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거창한 이유 따윈 없었다. 그동안 기타를 다루어 왔으니 음악적 활동을 이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노랠 듣고 즐거워하는 게 좋았다.

붉은 집
: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인식하다

이어지는 곡은 ‘붉은 집’이었다. 처음 멜로디에 Jimi Hendrix ‘Red House’를 차용했다. 같은 이름이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정육점에 가면, 고기가 있지. 죽으려고 태어난 네발 달린 짐승들.’
“희생 위해 살아가는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렇게 말하면 꿈보다 해몽이겠지만. 살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육점이라는 게 잔인한 곳인데 평범하게 우리 주위에 있고, 사람들이 그걸 인식하지 못하잖아요? 그것에 대한 인식이에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자 노래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노랫말에 평소 생각이 담긴다. 정육점을 보고 스친 생각으로 ‘붉은 집’ 노랫말을 만들었다. 채식하기로 다짐했지만, 첫날부터 순대국밥을 먹었다는 위트 있는 나레이션이 이 노래의 포인트다. “어쩌면 채식을 비꼬는 건지도 몰라요”

어떤 이들은 ‘붉은 집’을 듣고 다른 상징을 읽는다. “‘붉은 집’을 듣고 홍등가를 연상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 이야길 한 거냐고 저한테 물어봐요. 나이 든 분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아이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잖아요?”

가끔씩
: 가끔씩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을 노래한다

‘가끔씩 생각이나. 그늘진 네 얼굴이. 좀처럼 웃질 않아. 속상한 기억이나. 익숙한 거리에서. 그늘진 발걸음을. 좀처럼 뗄 수 없어. 슬프던 기억이나.’

‘가끔씩’은 유일하게 페이스북에 영상으로 올린 노래다. 그리고 유일한 사랑 노래다. ‘이제는 괜찮은데, 네가 날 아프게 한대도, 이제는 참을 텐데, 네가 날 슬프게 한대도.’라고 노래하지만, 이기수는 사랑에 순종적이긴 해도 순정적이지는 않다. 쉽게 놓아버리고 정나미가 없단다.

“특정인을 소재로 한 건… 맞네요. 멜로디가 떠올라서 녹음해 놓고, 가사도 적어두고 팽개쳐 뒀다가, 두어 달 후에 생각나서 다시 작업한 노래예요.” 이기수가 작업하는 방식은 ‘없다’. 펜과 공책이 필요하지도 않다. 불현듯 생각난 멜로디를 녹음하고, 불현듯 떠오른 노랫말을 적어 둔다.

예비군 찬가
: 정해진 것은 음악 하는 것밖에 없다

흔히 대학교에서 남자 대학생을 두 부류로 나눈다. 예비역인가, 아닌가. 갔다 왔나, 안 갔다 왔나. 스물일곱 이기수는 예비역 대학생이다. 내년에 졸업한다. 술을 많이 마신 어느 날, ‘예비군 찬가’를 만들었다. ‘예비군’이라는 단어를 계속 반복하다, ‘갔다 왔으니까, 갔다 왔으니까.’라고 외친다.

예비역, 대학교 졸업 예정자 이기수가 느끼는 마지막 학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 같은 또래 ‘청춘’들이 힘들다고 하는 게 엄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을 가져야 할 것 같긴 한데. 남들처럼 서류를 몇 십 개씩 쓰지는 못하겠어요. 뭘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겠고요.” 걱정해서 풀릴 일이 아니면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기력한 사람은 또 아니다. 평범한 회사에서 30년 근속하고 싶기도 하고, 떠돌이 음악가로 살고 싶기도 하다.

정해진 것은 하나뿐이다. 어떻게라도 음악을 하려는 것. “오래 하고 싶어요. 음악이 업이 되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어떻게든 곁에 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직 결정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물러가라
: 의식과 예술은 별개의 문제다

“다음에 할 곡은 비정치적인 노래입니다.”라고 운을 떼며 부른 노래는 ‘물러가라’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독재정권 물러가라.’라는 노랫말로 시작한다. 의뭉스럽기 그지없지만 이기수 생각은 다르다. “비정치적인 노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노래를 하겠다는 거죠.”

가끔 이기수의 페이스북엔 대선 후보 모 씨에 분노하는 글이 오른다. 의식은 날카로운데, 그걸 노래에 담지는 않는다. ‘물러가라’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제 모습이 시위대 같다고 해서 장난스럽게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다가 나온 노래예요. 저 스스로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으려고 하지만, 노래에 담고 싶지는 않아요. 의식과 예술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제 손을 떠나면 수습이 안 되지 않나요? 듣는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거예요.”

일단 이기수를 떠난 노래가 어떤 이에게는 조소를, 어떤 이에게는 분노를,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기수가 바라는 것은 한가지다. “제 음악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해요. 자유와 재미를 찾아서 하는 건데, 옭아매면 안 되죠.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 어렵지 않은 노래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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