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洞을 꿈꾸는 사람들
大洞을 꿈꾸는 사람들
  • 글 송주홍 사진 송주홍 사진제공 진잠마실
  • 승인 2013.01.18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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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_진잠마실

엘리베이터 타는데 같이 탄 사람이 버튼을 안 누른다. 잠시 후 같은 층에서 같이 내린다. 알고 보니 앞집사람이다. 한 층에 고작 두 집 사는데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아파트의 흔한 풍경이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도 모두 옛말이다. 거리상 가까운 건 분명한데, 그 이웃이 누군지 너도, 나도, 아무도 모른다. 닭장 같다. 꼭꼭 잠근 현관문이 가끔 삭막하다. 2011년 여름 진잠, 10명 내외가 모였다. 오다가다 만나서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이다. 그들은 살만한 동네를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 ‘진잠마실’ 탄생이다.

작은 걸음 내딛는 사람들

진잠마실 사람 중에는 원주민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각자 태어난 곳도 다르다. 하지만 진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그래서 그들은 진잠을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바라는 건 많지 않다. 진잠을 요란스럽고 급격하게 바꾸려고도 않는다. 그저 주변에서 나고 피는 나무며 꽃과 풀을 보고 달과 별을 관찰한다. 때에 따라서 등산, 산책을 하고, 독서, 연주, 시낭송을 한다. 함께. 단, 강요는 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함께 하자고 멍석을 깔아줄 뿐이다. 원하면 함께 하고 원치 않으면 말면 된다. 처음부터 진잠마실을 함께한 김동순 씨는 “그저 서서히 서서히 ‘마을’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한다.

“마을 동(洞)을 보면, 물 수(水)에 같을 동(同)을 합친 한자예요. 물이 같다는 뜻으로 한 우물을 마을 주민이 같이 먹는 데서 비롯했죠. 물은 생명의 근원이에요. 결국 마을이란, 생명의 근원을 함께 하는 거죠. 그렇다고 저희들이 당장 ‘마을’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내가 사는 지역 역사는 어떤지, 무슨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지, 주변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알고 지내자는 거죠. 진잠마실은 그 계기를 만들려는 작은 걸음이에요.”

만남, 그 자체가 축제라는 사람들

진잠마실은 자연, 문화유산과 역사, 전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다. 그들은 이것을 엮어 틈틈이 축제를 벌인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별 건 아니다. ‘만남’ 그 자체. 그들이 말하는 축제다.

마실 다니며 찍었던 사진을 모아 진잠도서관에서 ‘마을 사진전’을 열고, 칠월 칠석에 학교 운동장에 모여 별을 관찰한다. 칸나와 코스모스를 심어 ‘진잠마을 둘레길’을 만들고, 그 길을 걸으며 시낭송도 하고 연주도 한다. 진잠 명산인 산장산을 즐기자고 100일 간 매일 아침 산장산에 오르기도 했다. 진잠도서관 협조를 얻어 때로는 많은 주민이 함께 했고, 언젠가는 비가 와서 겨우 몇몇이 참여했다. 산장산 백일등반 대장정은 진잠마실 세 사람이 도전 했을 뿐이다. 그들 노력이 진잠에 큰 도움을 주는 건 아니다. 그래도 김동순 씨는 “괜찮다.”라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집밖에 나와도 PC방밖에 갈 데가 없어요. 친구를 만나도 스마트폰 가지고 따로 놀죠. 정서적으로 메마르는 거예요. 어른들도 마찬가지고요. 별거 아니지만 그런 이들에게 메마른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잖아요. 그거면 돼요.”

영혼박물관 만들겠다는 사람들

진잠마실은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래도 조급하진 않다. 천천히,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면 되니까. 그들이 계획 중인 첫 번째는 ‘진잠마을학교’다. 큰 건물 짓고, 운동장 만들겠다는 건, 물론 아니다. 작은 공간과 마당이면 된다. 주말에 모여 학생, 어른 구분 없이 각자 관심 분야를 알려주고 배우는 거다. 둘째는 ‘진잠마을 백과사전’이다. 진잠 자연과 문화유산, 역사, 사람 등 모든 이야기를 모으고 담아 공유하자는 거다. 마지막이 ‘영혼박물관’이다. 진잠에서 나고, 진잠에서 자란, 혹은 진잠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진잠도서관 협조가 필요해요. 원하는 사람에게, 죽기 전 작은 자서전 하나씩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걸 도서관 한 쪽에 보관해주는 거죠. 진잠 사람 영혼을 보관하는 도서관, 그래서 영혼박물관이에요.”

그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진잠은 “대동(大洞)”이다. 뜻을 물으니 요즘 말로 “지역공동체” 쯤으로 풀이할 수 있단다. 가까운 곳에 걷기 적당한 농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진잠마실 사람들. 펑펑 눈이 내리던 12월 어느 날. 진잠이 참 따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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