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조모께서 안계셨으면 오늘처럼 관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모께서는 제가 없으면 여생을 편히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황제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 조모께 은혜를 보답할 날은 짧습니다…”
오조사정(烏鳥私情)은 고문진보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고사이다.
오(烏)는 까마귀의 형상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 까마귀는 검기 때문에 눈을 알아보기 어려워 새 조(鳥)에서 획 하나를 뺀 것이다. 조(鳥)는 새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추는 꼬리
짧은 새의 총칭인데 비해 조(鳥)는 꼬리가 긴 새의 총칭이다. 정(情)은 마음 심(心)에 푸를 청(靑)을 짝지은 글자로서, 소나무가 항상
고결하고 푸르듯 사람의 마음은 변함이 없음을 뜻한 데서 ‘사랑’의 뜻이 되었다.
중국 진(晋)나라에 이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개가하자 조모의 품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그는 학문이 뛰어나 일찍 관직에 나갔다. 관직 생활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는 늘 조모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96세의 조모께서 노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이 왔다. 소식을 접한
이밀은 곧바로 황제에게 관직을 사양하는 글을 올렸다.
“저는 조모께서 안계셨으면 오늘처럼 관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모께서는 제가 없으면 여생을 편히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황제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 조모께 은혜를 보답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烏鳥私情, 反哺報恩)으로 조모님께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게 해주십시오.”
황제는
그의 효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참으로 효심이 깊도다. 비록 나라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사람에게 있어서 효가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이오. 그대는 향리로 내려가서 성심성의껏 효심을 다하시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올라와 나라를 위해 노력해 주기 바라오.”
이밀은 곧바로 향리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조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했다. 이때 그의 나이 34세 되던 해이다. 그의
효행은 후세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이때부터 오조사정은 ‘효행이 지극하다’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조사정은 반포보은과 더불어
효행사례로 세간에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다.
충·효·예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효행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야은 길재, 서포 김만중, 정승 맹사성으로부터 범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옛 사람들은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는 우선 대변의 색깔을 살피고, 맛을 보았다고 한다. 그 대변의 단맛과 쓴맛의 정도에 따라 부모님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의 불결한 행위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변을 맛본다는 것은 부모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자 하는 효행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행을 한다. 그러나 핵가족화 되면서 급격히 불효에 관한
소식들이 많이 들려온다. 심지어는 부모를 굶기어 사망하게 한 사례도 있다.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죽인 경우도 허다하다. 참으로
안타깝다.
까마귀도 자라면 자신을 키워준 어미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효행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실행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