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유규상 기자] 정치권의 일각에서는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아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와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10일, 아산YMCA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주제로 시민 집담회를 열고, 최근 국회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행정통합 특별법 추진에 대해 “시민의 동의와 숙의가 완전히 배제된 위험한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집담회 사회를 맡은 이영석 아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아산YMCA 사무총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대전·충남 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자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주민의 삶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는 논의 과정에서 시민은 보이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구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영석 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는 찬성과 반대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라, 이 논의가 과연 정당한 절차와 충분한 숙의를 거치고 있는지부터 함께 점검하기 위한 자리”라며 “시민사회가 이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집담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첫 발제를 맡은 임가혜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행정통합 추진 경과를 설명하며, 현재 상황을 “형식적 민주주의만 남은 상태”라고 평가했다.
임가혜 사무처장은 “지방의회 의결로 주민 의견 수렴을 갈음할 수 있다는 해석 아래, 주민투표는 사실상 봉쇄됐다”면서, “주민은 요구할 권한도, 판단할 정보도 없는 구조에서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여론조사에서도 찬반보다 ‘잘 모르겠다’,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다”며 “이 사안은 결론의 문제가 아니라, 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조건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지방선거 일정에 맞춰 추진되는 통합은 지역의 미래를 선거 전략으로 소비하는 것”이라며 “시민사회는 지금이라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복권승 대표(터무니연구소)는 대전·충남 통합 논의를 보다 구조적인 시각에서 비판하면서, “행정통합과 메가시티 논의는 수십 년간 연구돼 온 주제이지만, 지금처럼 정치적 이벤트를 계기로 특정 지역만을 잘라 급히 통합하는 방식은 그 어떤 이론적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지역 전략은 행정구역 통합이 아니라 기능적 연계와 생활·경제권 중심의 메가리전”이라며 “충청권 전체를 놓고 보면 이미 하나의 광역대권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분절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전·충남만의 통합은 수천억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매몰비용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며 “그 비용은 결국 시민의 혈세로 충당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유발언에서는 각 분야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용화동 이준호님은 “행정통합이 추진되면 교육 행정 역시 광역 단위 재편이 불가피한데, 정작 학교 현장과 교사, 학부모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도 농촌과 중소도시 학교는 인력과 예산에서 소외되고 있는데, 통합이 오히려 교육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아산시민연대 오미경 부대표 역시 “통합 논의는 지역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돌봄·교육·생활 서비스의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아이들과 주민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송악면의 시민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주민자치와 생활 영역의 제도적 기반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문제로 제기했다. 참석자들은 “행정구역을 먼저 합친다고 해서 지역의 민주주의와 삶의 질이 자동으로 강화되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주민자치법·마을교육공동체 관련 제도·사회연대경제 관련 법과 정책 체계가 미비한 상황에서의 행정통합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진형 풍기동 주민은 “주민 다수는 대전·충남 통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법안은 이미 국회를 향해 가고 있고, 통과가 기정사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면서, “주민투표라는 최소한의 직접 민주주의 수단조차 검토되지 않았다. 형식적 절차만으로 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임가혜 사무처장은 “행정통합 외에도 이미 법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충청광역연합을 다시 언급했다. 그는 “행정구역을 합치지 않더라도 광역교통, 산업 연계, 환경·의료 정책은 충분히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면서, “이미 만들어진 제도를 외면한 채, 검증되지 않은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무책임하다. 잘못된 과정은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담회 참석자들은 이번 논의가 단순한 행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자치와 주민주권의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한 “설령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지금의 졸속 추진과 절차적 결함을 분명히 기록하고 문제 제기하는 일은 이후 책임을 묻고 되돌리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와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번 집담회 논의를 토대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의 재검토를 공식적으로 요구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아산시민단체협의회는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아산시위원회 대전충청인아이쿱 아산쿱 아산농민회 아산시민연대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아산YMCA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아산학부모회, 아산책읽는시민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아산지회,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사)동학농민혁명아산시기념사업회,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아산유족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