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방대한 유전체 속에서 미세한 DNA 손상 부위를 찾아 복구하는 정밀한 분자 메커니즘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규명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과학과 이광록 교수팀이 UNIST, 성균관대와 DNA 손상 부위를 인식해 복구를 시작하는 효소인 ‘APE1’의 이동 및 탐색 메커니즘을 실시간 분자 수준에서 시각화하고 정밀하게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4일 밝혔다.
우리 몸의 DNA는 매일 세포당 약 1~2만 건의 손상(무염기 부위)을 입는다.
유전 정보의 글자 하나가 지워지는 이 손상 부위가 제대로 복구되지 않으면 암이나 노화 등 치명적인 질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방대한 유전체 속에서 아주 희귀한 손상 부위를 찾아내는 것은 ‘서울 시내에서 바늘 한 개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연구팀은 단일분자 FRET(smFRET), DNA curtain, 분자동역학(MD)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APE1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결과 APE1은 무작위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DNA 가닥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손상 부위를 찾는 ‘1차원 확산(1D sliding)’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미로 같은 지하 배관을 따라 이동하며 누수 지점을 찾는 지능형 점검 로봇과 유사한 방식이다.
특히 연구팀은 효소 끝부분의 유연한 구조인 ‘비정형 영역(IDR)’과 ‘마그네슘 이온(Mg²⁺)’이 협력해 탐색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형태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비정형 영역(IDR)은 갈고리처럼 DNA 가닥을 붙잡아 효소가 떨어지지 않고 장거리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이 영역을 제거하자 손상 부위 탐색 능력이 5배 이상 감소했다.
또 마그네슘 이온은 기존에 단순히 절단을 돕는 보조 인자로만 알려졌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APE1 활성 부위의 음전하를 중화시켜 DNA와의 정전기적 반발력을 줄이고 안정적인 슬라이딩을 돕는 윤활유 역할을 수행함이 증명됐다.
이번 연구 성과는 그동안 화학적 절단 기작에만 집중돼 있던 기존 연구들과 달리 효소의 ‘탐색(Search)’ 과정에 초점을 맞춰 진핵생물 복구 시스템의 진화적 이점을 생물물리학적으로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연구팀이 구축한 단일분자 이미징 시스템은 약물 후보 물질이 실제 효소의 탐색 능력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정밀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APE1의 손상 탐색 경로를 차단하고 암세포의 자가 복구 능력을 무력화하는 소분자 억제제 스크리닝 플랫폼 등 차세대 항암제 신약 개발 연구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광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생체 분자가 비정형 영역을 통해 DNA 손상 부위를 빠르게 탐색한 뒤 정형 영역을 통해 정교하게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향후 실제 세포 내 복잡한 환경을 모사해 뉴클레오솜이나 크로마틴 구조 내에서 APE1이 어떻게 손상 부위를 찾아내는지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