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책을 뒤적이며 찾은 진짜 시어"... 이해인 수녀의 깊은 고마움
- 고통을 넘어 날아다니는 ‘인류애적 사랑’
[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세종시 장군면의 ‘갤러리 힐’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먹향과 함께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글귀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세종한글멋글씨협회(회장 김순자)가 개최하는 정기전 ‘이해인 수녀의 글과 함께하는 멋글씨전’의 현장이다.
이번 전시는 맑고 고운 시어로 대중에게 평화와 위안을 건네온 이해인 수녀의 글귀를 한글 멋글씨(캘리그라피) 작가들과 시민들이 저마다의 독창적인 서체와 감성으로 재해석한 자리다.
특히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돌과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인 만큼, 한글에 담긴 사랑과 문화적 가치를 되새기는 의미를 더했다.
방송인이자 문학박사인 정재환의 매끄럽고 품격 있는 사회로 진행된 오프닝 행사에는 세종시의 교육, 정치, 문화, 예술계를 아우르는 수많은 내외빈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교육 및 정관계는 강미애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당선인, 안신일·이순열·박병남 세종특별자치시의회 의원, 유민상 한글문화도시과 과장, 이은수 세종시 세원관리과장 등이 참석하여 한글 문화 예술 발전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한글 및 문화예술 단체는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이재민 세종연구원 원장, 김상석 우리한글박물관 관장, 이상근 문화유산환수재단 이사장, 홍만희 세종여성플라자 대표, 금정희 세종미술협회 회장, 조희성 세종조형미술협회 회장 등이 자리를 함께하며 전시의 문화적 가치를 높였다.
지역 사회 및 교육계는 유철 전 충북청명학생교육원 원장, 이성은 도담초등학교 교장, 김태일 고운동청소년센터 센터장, 박요한 세종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 김희모 대한어머니회 세종중앙지회 부회장, 박윤경 전 보람동 주민자치위원회 회장 등 지역 사회의 주역들이 참석해 축하를 건넸다.
문화예술인 및 언론는 정희정 KBS 작가, 강대헌 에세이스트, 장석춘 시인, 조경희·민선미 작가, 이유선 선생님, 장진아 기자를 비롯해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인 유혜리와 이예인 끌레르 대표 등이 참석해 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변규리 시낭송아카데미원장(대전시낭송예술인협회 회장)의 정성과 마음이 깃든 캘리그라피는 한 자 한 자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보드랍고도 강하게 관람객들의 마음과 영혼에 닿는 예술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먹의 농담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여백은 바쁜 일상 속 번잡한 생각들을 정갈하게 비워내고, 고요함이 피어오르는 순간을 선사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은수 세종시 세원관리과장은 "시민들이 만든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수준 높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며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과 마음이 담겨 있어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이해인 수녀가 직접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지금까지 1,000편이 넘는 시를 발표하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해온 이해인 수녀는,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시가 타인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모습을 본 소회를 밝혔다.
그는 "작성한 사람의 입장에서 자기가 쓴 시 중 마음에 드는 구절을 임의로 뽑아 쓴 걸 보니 참 새롭게 다가온다. '내가 이런 말을 썼나' 싶어 되새김하게 되고, 마치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다. 세월이 지나 손때 묻은 구절을 다시 보게 되니 기도하는 마음도 들고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회를 밝혔다.
수녀는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시구들이 아닌, 직접 도서관에서 수녀의 책을 이만큼씩 쌓아두고 대조하며 작업했다는 회원들의 이야기에 깊은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작가들은 "인터넷 글들은 시어가 틀린 경우가 많아, 13년 전에 나온 수녀님의 전집과 책들을 일일이 뒤적여 가며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해인 수녀는 과거 대장암과 직장암 수술을 받고 인공장루를 착용한 채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인지 능력이 있을 때까지는 글을 계속 쓸 것 같다. 아프면 고통스러워서 글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프니까 고통을 통해서 글이 더 잘 나오더라. 내가 아픈 만큼, 이 고통을 통해 쓴 글이 다른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봉헌되기를 바란다. 몸은 비록 수녀원에 살지만, 글은 천사가 되어 온 나라, 온 세계로 날아다니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종교적 성역을 넘어 인간적인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고백하고, 그 안에서 위안을 건네는 그녀의 시는 국경도 초월한다.
이번 전시는 청보리 김순자 지도자를 필두로 해온 곽효경, 유림 김남임, 꽃마리 김미선, 소화 김순예, 청그린 정안숙, 도하 최성이 작가 등 수많은 작가들의 정성 어린 멋글씨가 만나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전시관을 가득 채운 “모든 순간은 결국 꽃으로 피어난다”는 문구처럼, 잠시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면 갤러리 힐 멋글씨전에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글과 따뜻한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하루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