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너희가 우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책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독자가 없다면 아무리 공을 들인 글인들 창작자 개인 만족 도구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몸을 부르르 떨게 했다.
그런데 월간 토마토 창간 4주년 특집을 논의하면서 한동안 잊었던 것이 떠오르며 그때 그 긴장감이 되살아났다.
그러던 중 문득 누군가가 파주출판단지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이나 다름없는 납 활자로 인쇄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였다. 문선공과 주조공이 대부분 예순을 넘겼기 때문에 이들이 세상을 뜨고 나면 대가 끊겨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활판공방. 어쩌면 글쟁이가 창간 특집 취재로 활판공방을 선택한 데는 ‘책을 내고 독자와 소통한다.’라는 더 근원적인 행위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책 내는 일을 농사에 비유한다면 농부 <월간 토마토>에게 활판공방은 이를테면 ‘옛날식 논’이라 할 수 있다. 콤바인으로 한 번에 탈곡과 선별작업을 하는 게 아닌, 사람이 직접 낫과 호미를 들고 추수하는 방식이다.
구수함 진동하는 활판인쇄가 좋다
“오늘 오신 분 나이가 어떻게 돼요? 84년생이라고? 그럼 김의경 씨가 태어났을 땐 이미 우리나라에 오프셋인쇄(Off-set printing; 금속 인쇄판에 칠해진 잉크를 고무 롤러를 통해 종이에 묻게 해 인쇄하는 방식. 단행본, 달력, 잡지 등 대량인쇄, 컬러 인쇄에 널리 쓰인다.)가 들어왔겠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쇄 90%는 납 활자 인쇄였다고. 그러다 컴퓨터와 사진 식자기가 들어오면서 신문사고 잡지사고 모두 오프셋인쇄로 바뀐 거지.”
1966년 문단에 들어서고 50년 가까이 시인이자 출판인으로 살아온 박건한 씨에겐 젊은 날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활판인쇄가 한순간에 뒷방 신세로 전락한 것이 몹시 안타까웠을 것이다. 쓸모없어진 활판인쇄 장비는 고철로 팔려나갔고, 활자를 원고대로 한 자씩 골라내는 문선공과 닳은 활판을 다시 주조하는 주조공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
마침 같이 일했던 정병규 디자이너, 시월출판사 박한수 대표도 사라진 활판인쇄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결국, 출판인 셋이서 10년에 걸쳐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며 인쇄 장인과 인쇄기기를 모아, 지난 2007년 파주출판도시에 입주했다.
애당초 활판인쇄가 퇴장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속도전에서 오프셋인쇄한테 밀렸기 때문이다. 오프셋인쇄가 시간당 1만 장 정도를 찍는다면 활판인쇄는 1천 장밖에 찍어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활판인쇄에는 구수함이 있다. 박건한 편집주간은 이를 “가마솥과 같은 맛.”이라고 표현한다. 압력밥솥이 빠른 속도와 편리함 덕택에 균일한 맛을 뽑아내지만, 가마솥처럼 누가, 어떻게 불 세기를 조절해서 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 정성과 손맛을 느끼진 못한다는 것이다. 박건한 주간을 비롯한 활판공방 운영진은 활판인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아날로그적 향수를 잊지 못하는 걸까?
10년에 걸쳐 시선집 100권을 내놓겠다는 애초 목표 아래 현재까지 박목월, 이근배, 김종해, 김남조 등 원로시인의 시선집 22권이 세상에 나왔다. 권당 1천 부 한정판으로(뒷장에 1부터 1000까지 일련번호가 있다.), 특수한지에 시인이 직접 고른 주옥같은 시 100편과 육필 시를 함께 담는다. 먹물이 종이에 스며드는(박 주간은 이해를 돕고자 ‘눈썹 문신’이라는 비유를 썼다.) 활판인쇄 공정과 뒷장이 비치는 한지 재질 특성상 양면인쇄를 할 수 없어, 한지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제본한다. 빠른 속도로 대량 인쇄해 유통하는 요즘 책에 비하면 무척 느린 걸음이지만 뚜렷한 발자국이 남는다. 천 년을 내다보고 만드는 책이니 묵직한 무게가 실릴 수밖에.
“오래 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박건한 주간 허락을 맡고 공방 안 주조기계며, 인쇄기, 활자자모 등을 살펴보고 있는데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강한 사람이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오래 남는 사람이 강한 거라는.”
토마토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글쟁이도 그간 심심찮게 들은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재미있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며 일하는 우리가 안쓰럽다는 듯이 힘들겠지만 버텨내라는 위로였다. 그러나 유치하게 ‘창간 특집 취재로 찾은, 그것도 활판공방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운명의 계시인가?’라는 감흥을 받진 않았다. 거기엔 농담 조로 일관했던 개그맨 출신 진행자의 진행 스타일도 한몫했지만, ‘뚜렷한 발자취 없이 무작정 긴 생명력이 과연 의미가 있나.’라는 반항심이 컸다.
“구식이 아니라 전통이다”
활판공방을 취재하면서 안타까웠던 한 가지는 장인과 마찬가지인 숙련공들이 은퇴하면 인쇄기와 주조기 공정이 멈춘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활판공방은 그저 ‘한땐, 그땐 그랬지.’를 회상하는 죽은 박물관일 뿐이다.
박건한 편집주간은 “활판인쇄는 구식이 아니라 전통방식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속도전만이 진리라고 믿는 요즘, 반드시 빠른 게 정답은 아니라고 숨통을 트여주는 몇 안 되는 곳이니까. 10년 후, 20년 후 찾아가도 어제 만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멀쩡히 그 자리에 있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