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골목길 재생사업 성공하려면…
대전시 골목길 재생사업 성공하려면…
  • 월간토마토 김의경
  • 승인 2011.09.0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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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깔끔해진 삼청동의 양면성…대전 자원부터 둘러봐야

대전시가 LED거리로는 모자랐나 보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골목길 재생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번엔 낙후되고 침체된 원도심 골목을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골목으로 되살려 보겠다는 취지다.

9월 초 자치구 신청을 받고 대전시 도시균형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9월 말까지 시범사업 대상지역을 선정한 다음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할 거라고 한다.

서울 삼청동 ‘디자인 서울거리’처럼 구도심 골목을 ‘위대한 파괴’의 개념으로 접근하겠다며 염홍철 시장을 비롯해 공무원 10명이 몸소 서울에 견학까지 다녀왔다.

‘위대한 파괴’라는 용어 자체도 아리송하지만, 사업 대상 선정 기준은 더 헷갈린다. 대전시 자체 보도자료를 보면 대동 ‘무지개 프로젝트’처럼 노후 주거지역 환경개선인 것처럼 보이는데, 언론매체에서 쏟아내는 기사엔 원도심 상가 골목을 지칭하며 도시를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하니 말이다.

대전시가 하겠다는 ‘골목길 재생사업’은 다섯 개 지역 민간건물, 간판, 담장 등을 통합디자인하고 가로시설물정비, 마을골목길, 공터와 빈집을 활용한 주민쉼터, 공원녹지, 공동주차장 조성, 벽화 그리기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지난 2009년 대동에 시행한 ‘무지개 프로젝트’와 무척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골목길 재생사업은 골목 중심의 ‘리모델링’이고, 무지개프로젝트는 동네 자체를 대대적으로 예쁘게 ‘성형수술’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전시가 벤치마킹했다는 ‘디자인 서울거리’는 ‘무지개 프로젝트’와 무엇이 다른지 알아봤다. ‘디자인 서울거리’는 산업, 기능과 효율 중심의 딱딱한 도시 이미지에서 문화와 디자인이 중심이 된 부드러운 도시로 거듭나고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07년부터 펼쳐온 역점정책 가운데 하나다.

지금껏 기능적 관점에서 개별적으로 추진했던 것을 유기적 통합성을 더한 디자인으로 삶과 지역문화가 공존하는 거리로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거창한 것처럼 보이지만, 간판 개선과 보도 조성, 펜스 정비, 맨홀 뚜껑 개선, 휴식공간 개선 등 공공시설물의 통합적 디자인 및 재정비가 주 사업 내용이다.

서울시와 대동 ‘무지개 프로젝트’를 비교하자면 예산이 쓰이는 목적부터 다르다. 다시 말해 대동의 사례는 시혜적 복지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서울시는 시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부드럽고 세련되게 만들고자 시도한 것이다.

단순한 거리 디자인이라면 대전도 이미 원도심 상업 지구 곳곳에서 추진한 바 있다. 일명 ‘○○○특화거리’다.

생각하면 할수록 염홍철 대전시장과 공무원들이 서울 삼청동 일대와 인사동의 어떤 매력에 빠져 골목길 재생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때마침 같은 생각을 하던 대전문화연대 김선미 전 대표와 박은숙 사무국장도 <월간 토마토> 서울 취재에 동행했다.

화려하고 깔끔해진 삼청동의 양면성

서울에 도착한 토마토와 일행은 일단 종로구 삼청동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북촌 한옥마을과 이웃한 삼청동은 카페와 갤러리가 즐비한 골목과 가게 고유의 분위기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내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동네다.

지리상 정독도서관을 중심으로 친다면 도서관 주변으로 카페거리, 북촌길 등 여러 골목이 있고, 그 위로 수많은 아트숍, 카페, 갤러리, 식당 등이 줄지어 있다. 대로 바로 뒤엔 비탈길에 혈관처럼 오래된 주택골목이 얽혀 있다.

특히 팔판동 삼거리에서 시작해 카페거리를 지나 삼청공원까지 이르는 ‘삼청동 길’ 800m 구간이 지난 2008년 ‘디자인 서울거리’로 재정비한 거리다. 간판 통합디자인, 전선지중화 작업, 인도확충, 도로 축소 재포장, 공공시설물 재정비 등이 이뤄졌다. 건물 자체가 신기하고 현대적인 것도 있었지만, 한옥을 고쳐 카페를 만드는 등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삼청동의 진수는 오래 입은 스웨터처럼 낡은 주택으로 촘촘하게 짜인 골목이다. 앞선 상업 시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서민의 진한 생활사가 녹아 있으니 눈이 닿는 곳마다 신선하고 흥미로울 따름이었다.

답사를 어느 정도 끝내고 삼청동 길 끝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이곳 역시 디자인 서울거리 사업을 할 당시에 간판을 재정비했다고 한다. 주인은 “예전 간판이 나은 것 같다.”라며 “시에서 보조금을 보태는 식으로 해서 바꿨다. 예전 간판을 오랫동안 써 왔으나 불법간판이라 바꿀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금 간판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또 이 주인은 예전 간판을 기억하고 찾는 손님이 가게 고유의 특색이 사라져 발길을 돌릴까 걱정했다.

우리가 가진 자원부터 둘러보자

홍대 내지는 가로수 길과 비슷해진 삼청동을 돌아보는데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대전에 삼청동을 접목할 사례가 있느냐는 거다. 골목길은 단순히 ‘샛길’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웃 아이가 공을 들고 나와 함께 놀자고 목 놓아 외치는 곳, 슈퍼에서 콩나물 사서 들어가는 길에 마주친 이웃과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곳이다. 즉, 삼청동 뒷골목처럼, 북촌 한옥마을처럼, 진한 생활사가 녹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로 따져봤을 때 대전에서 ‘골목길’이라 부를 수 있는 곳 가운데 태반은 재건축·재개발사업대상지이거나, 이미 기억 저쪽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삼청동처럼 골목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재건축·재개발사업 대상지를 해제하기라도 할 것인지 의문이다. 따라서 사업명만 다를 뿐 기존 지역과 중복될 확률이 높고, 사업을 추진한다 해도 결국엔 본래 추진하고자 했던 성격과 전혀 다른 얼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각 구청에서도 대상 지역을 선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이에 대해 대전시 도심활성화기획단 관계자는 “구에서는 선정기간이 짧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며 “낡은 주거지역에 추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서울시가 진행한 ‘디자인 서울거리’는 사업결과에 대한 평가가 갈리고 있긴 하지만, 오세훈 전 시장의 핵심 사업이었던 만큼 최소한 뚜렷한 철학과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수행해내는 별도의 부서와 재단을 출범시켰다. 교과서로 치면 ‘디자인 과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전시는 ‘디자인 과목’ 중에서도 ‘삼청동 단원’만 빌려왔다. 멀끔해진 동네 경관과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모습에 반해 실행하는 데 필요한 절차만 빌려왔으니 당연히 기획 단계에서 치열한 고민이란 없다. 그러다 보니 기존 사업과 충돌도 생기고 본질을 잃고 표류하는 것이다. LED를 비롯한 원도심 관련 정책을 보면 그러한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문득 어느 디자인칼럼니스트가 한 말이 떠오른다.

“꽃을 피우려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자라는 성장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행정기관은 성장을 기다릴 새 없이 피어 있는 꽃을 옮겨 심고, 효과가 없으면 바로 다른 꽃을 갖다 심는다. 이게 바로 한국 행정기관의 전시행정이다.”

그 말이 정답이다. 대전시! 좋아 보인다고 즉흥적으로 따라 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자원에 대해 자세히 검토한 다음 정책 방향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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