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치고 먹자골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마트에 떠밀려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대전시민이라면 누구나 어린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먹자골목에 들려 허기를 달랬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현재 대전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은 중앙시장이다.
먹자골목은 중앙시장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데, 이는 먹자골목의 위치나 생성과정이 중앙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은 북쪽의 중앙로, 서쪽의 대전천, 남쪽의 대흥로, 동쪽의 인효로를 경계로 하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 규모가 인근의 공주장이나 유성장보다 작기는 했지만 18∼19세기부터 지금의 인동에 싸전을 중심으로 한 장이 있었다고 한다.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되고 일본상인들이 역 앞쪽인 지금의 원동부근에 시장을 만들면서 이것이 상설화되었고 인동의 대전장과 원동의 시장이 공존하면서 발전하다가 6.25때 미군의 소개 작전으로 폐허가 되었다.
전쟁 후 피난민을 포함한 상인들이 허름한 목조위주의 건물을 지어 장사를 계속했고 1954년에 675명의 상인들이 ‘중앙시장주식회사’라는 상호로 중앙시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런 중앙시장에서 먹자골목은 대전역-도청을 잇는 중앙로에서 홍명상가 앞길을 따라 남쪽으로 두 블록을 지나 만나는 동서방향으로 곧게 뻗은 폭 6미터, 길이 140미터 정도의 골목길을 일컫는다.
그 주변은 70년대 당시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신 상권을 이루고 있었고 중앙극장, 많은 서점들, 각종 의류상들이 밀집해 활기를 띠고 있어서 젊은 학생층이 많이 찾던 곳이었다.
먹자골목은 이런 주변환경을 배경으로 중앙시장의 발전과 더불어 한 동안 발전을 계속해 1960년대 말에 몇 개의 건물로 시작한 이곳이 1970년대 초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폭 3미터 남짓의 먹자골목 가게들
예전엔 중앙시장이나 먹자골목을 찾을 때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했지만
직접 차를 가지고 이곳에 오기란 쉽지만은 않다.
이 일대에 주차장은 대전천변의 하상주차장 뿐이어서 시장입구를 통과해야 하는데 홍명상가 광장의 옆과 앞길에서 들어오는 차가 뒤엉켜서 한바탕 몸살을 앓아야 간신히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다.
주차료는 30분에 700원인데 장을 보러 오거나 싼 맛에 먹자골목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먹자골목 입구에 이르자 누렇게 변색된 현수막 글자가 눈에 띈다.
“이곳은 예부터 전해온 먹자골목입니다. 저렴하고 알뜰하고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
골목의 바닥은 시멘트포장으로 거칠게 마감되어 있고 맨홀마저 불규칙하게 뚫려 있는데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려 청결하지 못한 느낌을 준다.
지어진지 30년이 넘은 건물들은 3층이 주류인데 일제시대의 토지구획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좁고 긴 구조를 하고 있다.
외부마감은 대부분 값싼 페인트나 타일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관리조차 잘 되지 않아 더욱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또한 특별한 외부조명 없이 골목의 밤을 밝히는 점포들의 간판마저 그 크기나 위치가 서로 달라 어수선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러나 점포들의 특징을 잘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공간구성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좁고 긴 대지모양 때문에 업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점포는 폭이 3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방이 도로면에 배치되어 있어, 주방을 제외하면 출입문 한 짝을 간신히 설치할 수 있는 폭이다.
최근의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들이 도로면에 전면유리를 설치하고 주방을 내부 깊숙이 배치하는 것과는 상반된 배치방식이다.
이것은 먹자골목의 식당 중에 주인 혼자 일하는 곳이 많은데 주인 혼자서 지나는 행인에게 호객을 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보여서 전시효과을 내고 식당에 들어온 손님에게 주문과 서빙을 동시에 하기에 적절한 배치방식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배치방식 때문에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은 항상 자신이 주목한 식당의 음식과 주인의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데 요즘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는 볼 수 없는 정겨운 공간구성이다.
먹자골목으로 들어오자마자 단골집으로 직행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행여 처음 오는 사람이거나 구경거리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가, 주인이 인심이 좋아 보이는가, 그래 이 집이다!’
점포 새단장으로 예전 활기 찾았으면
소득이 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주부들의 발길이 백화점과
대형할인마트로 몰리면서 중앙시장과 더불어 먹자골목의 모습이 예전같지 않다.
더구나 주변의 상권도 둔산 신시가지나 새로이 조성된 으능정이 문화거리로 옮겨가면서 학생들마저도 발길이 뜸하다.
손님만 있으면 밤을 새워가며 영업을 하던 먹자골목도 5년 전부터는 밤10시 30분이면 일제히 영업을 중단해 어둡고 을씨년스럽게 변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먹자골목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먼저 중앙시장 안에서의 먹자골목의 역할이다.
중앙시장 안은 골목에 난전이 자리잡고 있고 낮은 천막이나 파라솔 등으로 드리워져 있어서 긴 미로와 같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먹자골목은 난전과 천막 등이 없어서 복잡한 시장골목을 빠져나온 사람들에게는 폭이 6미터밖에 안 되는 이 골목이 좁지만 상대적으로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 된다.
또한 이 곳 점포들이 갖는 특별함이 있다. 점포가 좁기 때문에 서로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 이런저런 눈치볼 필요가 없는 편안한 장소다.
식당에 들어올 때 주인과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음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손님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 그 속에 녹아드는 정겨움….
또한 뭐니뭐니해도 이곳의 가장 큰 힘은 가격이다.
라면 한 그릇에 천원이니 대전의 다른 곳에 비해 반값 밖에 되질 않는다.
한국음식의 맛은 경륜에서 나온다고 하던가? 이곳의 식당은 같은 업종으로만 몇십년씩 해오는 곳이 많아 값에 비해 음식 맛이 좋다.
그리고 이곳의 순대는 타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식용비닐과 식용물감의 가짜순대가 아니라 진짜 순대에 선지를 넣어 만든 전국 어디에도 맛볼 수 없는 오리지널 순대다. 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가.
비싸고 고급스런 식당들도 있어야겠지만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과 학생들을 위한 편안한 식당들도 필요할 것이다.
허나 몇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지금의 특색있는 공간구조, 배치방식을 지키면서 좀 더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의 모습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골목 전체의 활성화를 위해 간판크기나 재질 등을 통일하고 골목의 바닥마감을 청결한 재료로 바꾸고 점포의 내부도 깨끗이 치장해서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
3대째 장사하고 있다는 골목 안의 한 순대집 아주머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얼마전만 해도 어깨 부딪치지 않고는 이 앞을 못 걸어 다녔어유.”
글·사진 / 심종훈 소장(건축사사무소 기가원 ☎042-628-9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