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떠들썩했던 총선이 끝났다. 대한민국은 선거철이 되면 모든 언론과 정당이 민심이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민심의 향배를 추적하는 여론조사가 난무하고, 많은 언론이 여론조사 결과에 담긴 민심의 뜻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선거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표를 위해 민심을 받들겠다고 외친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누군가는 승리하며, 누군가는 패배한다.
그러나 온 나라가 민심에 주목하던 선거가 끝나고 얼마나 지나면 정부와 정당과 정치인들은 다시 자신들만의 리그를 진행할 것이다.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주권자인 국민들의 정치적 행위는 다음 선거 때까지 미루어진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은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일에는 나라의 주권자로서 행세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시기에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잘 대변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거의 항상 그렇듯이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뜻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지금까지 대통령실(과거에는 청와대)과 여의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정부, 국회의원들의 말과 행동에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러한 소수 중앙 정치인들의 정치, 정부와 국회에서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의 곳곳에서 마을의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되어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정치, 즉 마을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의 정치는 중앙의 정치, 소수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의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생활 정치, 주민자치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지역의 주민이 중앙정부와 국회, 정당들의 정치에서는 소외되어도 우리 동네와 이웃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생활 정치, 주민자치에서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활동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전국 약 3,500개 읍면동 지역 단위에서 주민자치회(또는 주민자치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전국 읍면동 단위에 주민자치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실질적인 주민자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 속에, 2013년부터 주민에게 실질적인 자치의 권한을 부여하자는 주민자치회가 시범사업으로 조금씩 탄생하여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전체의 약 절반 정도의 지역에서 주민자치회가 운영되고 있다.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장의 자문역할과 주민센터 프로그램 운영의 기능만을 하여 읍면동 행정의 보조역할을 하는데 머물렀으나, 2013년부터 생겨난 주민자치회는 읍면동 마을계획 수립, 주민총회 개최, 다양한 주민자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마을주민들의 실질적인 대표조직으로 발전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종시에서는 24개 전체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생하기 시작한 세종시의 주민자치회는 매년 2~6월 사이에 걸쳐 자신이 살고 있는 읍면동의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리고 공론장을 통한 숙의 과정을 거쳐 차년도 마을계획 최종안을 마련한다. 이후 6~7월에 주민총회를 열고 주민들이 직접 마을계획사업을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여, 내년도에 실행하도록 하고 있다.
각 읍면동에서 수립하는 마을계획 실행 예산은 세종시 자치분권특별회계의 읍면동 지역자율사업예산에서 편성된다.
마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예산이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역의 주민 소통과 화합, 주민자치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을 할 수 있어 주민자치회에는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될 수 있고, 주민자치 발전에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세종에서 2019년 처음으로 주민들이 마을계획 수립을 할 때에는 마을계획이 무엇인지,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절차와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어 전문가들의 지원 없이는 주민자치회가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어려웠다.
따라서 수차례의 교육과 컨설팅을 통해 마을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주민자치회의 경험이 쌓이고, 주민자치위원 그리고 주민들의 역량이 강화되어 왔다. 이제는 주민자치회의 마을계획 수립에 일률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회의 수요와 역량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주민자치회는 전혀 지원 없이 스스로 마을계획을 수립하기도 하고, 또 어떤 주민자치회는 원-포인트 교육 또는 컨설팅만으로 마을계획을 수립하기도 한다.
주민자치회 스스로 대부분의 과정을 진행하고 마지막에 전문가의 지원을 받는 워크숍만으로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아직 경험이 부족한 주민자치회에서는 약 3~4회의 전문가 코칭을 통해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민자치회가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여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였으나 이제는 주민자치회가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보다 대표성 있는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수립된 마을계획에 대하여 주민들의 공론장을 통해 충분히 숙의하는 과정을 통해 마을의 다양한 단체가 협력하여 제대로 마을계획을 이행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세종시의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세종사회적경제공동체센터는 주민자치회가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원하고 있는데, 올해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바로 보다 많은 주민이 참여하여 마을계획이 수립되도록 하고, 수립된 마을계획에 대해 보다 많은 주민 및 단체들이 참여하는 숙의 공론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주민자치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고 저절로 주민자치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주민자치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주민들이 자치활동의 경험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자치 역량이 높아지는 것이다.
주민자치회가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은 주민자치 활동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주민자치회의 경험이 축적되고, 주민자치 위원들의 역량이 강화되어 주민자치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주민자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주민자치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하는가 이다.
세종시의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바란다. 세종시 24개 주민자치회들이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실질적인 대표조직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