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우리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 글·사진 김선정
  • 승인 2012.12.14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개를 슬며시 들이밀었다. 그리고 살짝 들 여다보았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당신 들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느냐, 무슨 힘이 있 기에 이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힘을 밖으로 꺼내는 중이었다.

노동자 없는 꿈의 공장

‘꿈의 공장’이라고 했다. 최첨단 기계와 기술로 기타를 만들어 내는 이곳, 대 전 콜텍 공장을 그리 불렀다고 했다. 노동자의 하루가 쉴 틈 없이 빡빡하게 돌아가도, 편히 쉴 휴식 공간 하나 없어도 공장은 그렇게 불렸다. ‘꿈의 공장’ 은 세계에서 잘 나가는 기타 회사를 만들었고 50년 넘게 기타를 만드는 탄 탄한 회사를 키워냈다. 하지만 회사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모든 직원을 내 몰았고 공장 문을 닫았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동자는 필요치 않았다. 회 사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장 문을 닫았다고 했지만, 부채 한 푼 없는 부 자 회사였다.

기타 회사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오늘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기 타 연주자 생애 최고의 음악적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 겠다.” 라고. 그 ‘순간’에 공장 노동자, 그들은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어둠이 너무 많다
콜트콜텍은 2007년 7월 대전 콜텍 공장을 위장폐업 했다. 콜텍 노동조합은 부당해고에 맞서 끊임없이 싸워왔다. 지난 7월 19일이 투쟁 2,000일이었다. 12월에 들어서면 6년이 넘는다. 콜텍 노조는 일방적으로 공장 문을 닫고 직 원을 해고한 회사에 ‘한국에서 공장을 하지 않겠다는 협약서를 써 달라, 그럼 물러나겠다.’라고 요구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위장폐업이라는 사실을 인정 하지 않는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추장, 된장 등을 만들어 파는 장류사업단 ‘산들바람’을 꾸려나가며 복직 투쟁 중인 콜텍 노동자 최정진(51세) 씨와 문희 (51세) 씨를 만났다.

“4월 10일 월요일 아침이에요.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공장 문이 닫힌 날이요. 이렇게 오랫동안 할지는 몰랐어요. 이 투쟁이 빨리 끝나면 좋겠어요. 저희도. 저희가 원하는 건 하나예요. 복직이요. 저희가 옳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뿐이에요.”

최정진 씨와 문희 씨는 2000년, 2003년부터 콜텍 공장에서 일하며 기타 모양을 다듬는 ‘빼빠 작업’을 했다. 매일 똑같은 생산 공정을 반복했다. 기계적인 반복 작업이었지만, 이들에게 유일한 돈벌이였다. 이들의 노동은 이익을 창출했다. 회사는 점점 부자가 됐다.

생산라인을 합리적으로 돌리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공장 안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존재했다. 점심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자리를 떠서는 안됐다. 한정된 공간에서 반복하는 노동 구조는 그들의 생각마저 지배했다. 부당한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해 ‘감히’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최정진 씨는 말한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회사를 공산당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공장 안에 들어가면 나오지를 못했어요.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했으니까요. 만약 점심 때 나가고 싶으면 관리자를 몇 명이나 거쳐 사인을 받아야 했죠.”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자식들을 위해 버텼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의 달콤함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문희 씨는 부당해고를 당하고 회사와 싸우고 있는 현재도 콜트기타를 보면 반갑다고 했다. “아, 내가 저기서 일했었는데, 예전 생각하면서 반가워하죠. 그리고 아쉬워요. 굉장히 아쉬워요.”

꿈의 공장 노동자

콜텍 노동자 그들은 ‘산들바람’에서 삶의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자신들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싸움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만 둘 수가 없어요. 지금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대로 끝내기엔 억울하고요. 이 투쟁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기는 사례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 같은 억울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죠.”

산들바람의 사무실은 노동조합원 지인이 창고처럼 사용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총 8명이 산들바람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중 4명은 인천 부천 공장 앞에서 투쟁 중이었다.

“공장 문 닫고 80명 넘었던 노동조합원이 현재 26명이에요. 흩어지지 않고 모이기 위해 산들바람을 만들었어요. 시작한 지 4년 됐네요”

이들은 공장 문이 닫힌 뒤 1년은 실업급여로 살았고, 1년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생계비 지원으로 살았다. 그 후 사회적일자리 기업을 신청해서 ‘산들바람’을 만들었다. 1년은 지원을 받았지만, 그 뒤로는 지원이 끊겼다.

“산들바람은 지속적으로 꾸준히 투쟁하기 위해 만들었어요. 하나의 명분인 셈이죠. 조합원을 상대로 수익을 내다보니 그리 수입이 많지 않아요.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르는 투쟁을 지속하려면 계속 이어나가야죠.”

장시간 투쟁이 이어지다보니 조합원 사이에는 이 싸움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도 물론 있다. 하지만 겁먹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힘 역시 그들은 갖고 있다.
“투쟁을 하다보면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져요. 회사와의 대립 조합원과의 갈등 등, 그런 하나하나 과정을 지켜나가는 데는 연대의 힘이 가장 커요. 그 1% 희망을 보고 저희는 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회사에서 벌인 일이 위장폐업이라는 것을 입증할 겁니다. 공장에서 하루를 일하더라도 꼭 입증하고 싶어요. 우리가 옳다는 것을요.”

보이지 않는 힘
보이지 않는 힘은 실체가 없다. 그 누구도 어떻게 보이지 않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지 알려주지도, 그 힘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주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알려줄 수도 찾아줄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가 ‘존재하지 않는다.’의 의미는 아니다.

자석 두 개가 밀어내고 당기는 것은 자석의 보이지 않는 힘, 자기력에 의해서다. 자석의 자기력처럼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힘은 분명 존재한다.

콜텍 노동자는 자신들의 숨통을 조인 기존 사회 틀에 맞서며 그 존재를 발견했다. 이들은 그 보이지 않는 힘으로 주변 움직임도 함께 이끌어냈다. 기타를 멘 뮤지션들은 이들을 위해 노래했고, 사진기를 든 사진가들은 달력을 만들어 이들을 도왔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마치 자석에 끌려오듯 모였다. 그게 바로 보이지 않는 힘이 불러온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실체는 없지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오랫동안 겹겹이 싸여 있던 어두운 사회 단면을 벗겨내면서부터 시작한다. 그 시작은 바로 자신 눈앞에 있는 현실부터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충청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