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문득 한 장밖에 벽에 붙어 남아 있지 않은 12월의 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한 작품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걸 보고 싶기 때문이야.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 생각하는 것도 피곤해. 이제 내가 잡고 있던 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싶어. 저 불쌍하고 힘없는 한 닢의 잎새처럼 말이야.”
제가 번역해 본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 속의 구절입니다.
영어 원문은 이렇습니다.
“...because I want to see the last one fall. I'm tired of waiting. I'm tired of thinking. I
want to turn loose my hold on everything, and go sailing down, down, just like one of those poor, tired leaves.”
불행하게도 폐렴에 걸린 주인공 존스는 길 건너 담벽에 붙어있는 담장이 이파리들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목숨도 이파리들과 함께 다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잎새가 떨어 지면 자기도 죽음을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신비하고도 머나먼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외로운 이는 없습니다.”
“The lonesomest thing in all the world is a soul when it is making ready to go on its
mysterious, far journey.”
여기서의 여행은 곧 죽음을 뜻합니다. 희망을 잃고 마지막 잎새를 자신의 운명처럼 여기며 절망에 빠졌던 존스는, 그러나 떨어져야 할 담장이 잎새가 모진 바람과 비가 내린 밤을 지나고도 떨어지지 않고 아침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삶의 희망을 다시 찾게 됩니다.
"무엇인가가 저기에 마지막 잎새 하나를 남겨서 내가 얼마나 사악했던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아. 죽기를 바라는 것은 죄악이야. 수프를 조금 갖다 줘. 작은 주전자에 밀크도 좀...”
존스에게 삶의 희망을 찾게 한 마지막 잎새는 이웃의 이름 없는 삼류 노인 화가가 담벼락에 그려 넣은그림이었습니다. 노인은 비 오고 바람 불었던 그날 저녁, 비를 맞으며 담장에 잎새 그림을 그린 후 폐렴에 걸려 죽습니다.
아주 짧은 이 단편 명작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담장이의 마지막 잎새에 자신의 삶을 매달리는 허망한 절망과, 작은 것에 희망을 되찾고 삶을 불태우는 나약하지만 강할 수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걸작을 남기고 싶다며 넋두리를 하던 무 명의 화가가 타인의 불행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람에게 삶을 찾아주고 희생한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줍니다.
사랑으로 타인에게 생명을 선사한 그 담장이 그림이야말로 걸작 중의 걸작이겠지요.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연주는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에 음악가들은 입을 모아 답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월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가 이끄는 7명의 실내악단이 타이타닉호가 가라앉는 마지막 순간에 승객들에게 선사한 연주들이었습니다.
이 연주는 배가 침몰하기 10분 전까지 3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덕분에 승객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여자와 어린이들부터 질서 정연하게 구명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희생을 무릅쓰고 자신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타인에게 희망과 생명을 안겨주는 마지막 순간의 마지막 사람들. 그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끝맺었던 마지막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희망과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살곤 합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의 결단에 달려 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끝은 끝이라서 다시 회복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지막의 모습은 다시 수정할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끝이 좋아야 다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라고 한 말도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고 매일매일 죽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연초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심하는 시작이라면, 연말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결산의 시기입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12월 초.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시 한 해를 맞이할 즈음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초엽에서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다시 서야 할 것입니다. 끝이 추하거나 비루한 마지막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책임있고 성실하게 더욱 더 처음처럼 마지막을 보내야 합니다.
벽에 걸려 있는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을 ‘마지막 잎새’처럼 끝이 아닌 희망의 잎새로 바라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저녁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