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세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은?
고유한 세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은?
  • 글 성수진 사진 박숙현
  • 승인 2013.03.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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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테미도서관, 충청남도 관사촌, 충남도청을 걷다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326-475번지,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326-67번지 일대,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287번지. 옛 테미도서관, 옛 충청남도 관사촌, 옛 충남도청사의 주소다. 월간 토마토는 2월 14일, 서로 그리 멀지 않은 세 곳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방담 산책단’을 모았다.

 

▲ 이용원 기자
오랜 시간 제자리를 지키다 각기 다른 변화를 맞은 세 곳이 아쉽고 궁금한 이들이 모였다.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임기대 씨,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윤순상 씨, (주)공감만세 조수희, 김구슬네 씨와 함께 길을 나섰다. 코스: 테미도서관 -> 충청남도 관사촌 -> 충남도청
▲ 김구슬레, 윤순상, 이용원, 조수희, 임기대

언덕 위 옛 테미도서관
도서관 기능은 잇고, 복합문화공간 기능 더하고, 어때요?

중부경찰서 뒤쪽 월간 토마토의 제2사무실 밑에서 모두가 모인 시각은 오후 1시 반이다. 테미도서관까지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충청남도 관사촌에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테미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정겨운 골목이 나온다. 테미도서관에 오르는 동안, 모인 이들은 테미도서관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했다. 테미도서관은 1961년, 대전시립도서관으로 개관해 2002년 대전평생학습관 테미도서관으로 명칭을 바꾸었지만, 계속 도서관으로 그 역할을 유지해온 곳이다.

임기대: 제가 고등학생 때 테미도서관에서 공부했었어요. 그때는 시립 도서관이었죠. 공부 열심히 하는 친한 친구가, 일요일이면 자전거 타고 저를 태우러 왔어요. 그 친구는 삼성동, 나는 태평동에 살았으니까 친구는 꽤 먼 거리를 자전거 타고 저를 데리러 온 셈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어도, 그 때는 그게 낭만이었어요.

이용원: 우리 장인어른이 시립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었어요. 장인어른 말씀을 들어 보니 사서가 막대기로 치면서 도서관에 공부하러 온 애들 조용히 시키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 테미도서관

임기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테미도서관에서 공부한 기억보다, 놀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았어요. 담배를 처음 피워본 곳이기도 하고요. 불량 청소년 느낌이 아니라, 호기심에 처음 경험해 본 공간이 이곳이에요. 도서관 가는 길이 저녁때는 좀 심란했어요.

‘테미도서관파’ 같은 게 있어서 돈도 뺏고 그랬어요. 그래도 도서관에 들어가면 안심이었죠. 도서관 안 다닌 애들보단 나아요. 책이라도 봤으니까요. 테미도서관은 공부하기 굉장히 좋은 곳이에요.

다른 도서관보다 공기도 좋고요. 유성에 사는데도, 가끔 테미도서관 와서 책 보고 그랬어요. 아 그런데 문이 닫혀 있네요?

이용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사는 해도 문을 열어 두어서 둘러볼 수 있었는데…. 테미도서관이 리모델링해서 예술창작센터가 된다고 합니다.

국가 소유의 땅을 대전시가 빌려 테미도서관을 세웠고, 중구청에 공유재산관리권을 넘겼다. 또, 중구청은 도서관 운영을 대전교육청에 맡겼다. 토지 사용료 부담을 서로 미루다 대전시가 토지 사용료를 부담했고, 골머리를 앓던 대전시교육청은 2012년 12월, 테미도서관을 대전시에 반환할 것이라 결정한다.

대전시교육청은 사정도서관을 신축하기로 했고, 중구청 역시 구립 도서관은 없지만, 한밭 도서관 등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고 같은 중구에 사정도서관이 생기니 테미도서관이 문을 닫는다 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에서 손을 놓았다.

대전시 입장에서는 빈자리에 무엇이라도 채워야 하니, 9억 5천8백만 원 예산으로 예술창작센터를 계획했다. 쉽게 말하면 작가들이 입주해 생활하며 작품 활동 하는 레지던스 공간이다. 건물 1층에는 도서관의 열람 기능을 유지한 학습관, 입주 작가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실, 편의시설과 사무실을, 2층에는 작업실과 다목적실, 샤워실과 주방을 둘 예정이다.

이용원: 요즘 공간만 나오면, 문화·예술로 메우려는 게 대세잖아요. 한마디로 말하면 레지던스 공간이 된다는 거예요. 그게 과연 옳을까요? 차라리 문화·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도서관 기능을 유지했으면 어떨까. 그러면서 전시도 하고, 근처에는 소공연장을 두고 공연도 펼치는 그런 곳이 되면 어떨까 싶은데요. 충남도청이나 문화예술의 거리와도 서로 멀지 않고….

임기대: 저도 이 공간이 계속 도서관으로 기능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곳은 공기가 다르거든요. 힐링한다는 느낌이 들고….

조수희: 저는 테미도서관도 잘 몰랐고, 테미도서관이 어떤 공간이 되는지도 몰랐어요. 이용원 실장님이 말씀하신 그런 공간 재밌겠는데요. 사람도 많이 오지 않을까….

이용원: 이곳의 진풍경 중 하나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성모여고 수녀님들이 학생들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거든요. 그 모습까지도 이곳 풍경 중의 하나였어요. 이곳이 레지던스 공간이 되면,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과 입주 작가와 충돌은 없을까 싶어요. 저는 레지던스 공간은 철저히 작가가 집중해서 작품 활동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임기대: 문화·예술 전문 도서관 괜찮네요. 이곳에 책이 빠지면 별로거든요. 책 읽다가 산책하고, 맑은 공기 마시고, 그러면 얼마나 좋은데요. 그리고 여기는 인터넷이 잘 안됐거든요. 그게 좋았어요. 생각에 몰두할 수 있거든요. 반강제적으로 하는 일에 몰두하는 거죠. 평지에 있는 도서관과 언덕에 있는 도서관은 차원이 달라요. 경험해 보면, 언덕 위 도서관이 무엇이 좋은지 알아요. 이 건물 부순다는 얘기 없는 게 어디예요.

윤순상: 저는 부여 사람인데요. 부여는 촌이라 그런지, 도서관도 자연과 함께 있어요. 대전에는 자연 속에 있는 도서관이 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곳은 언덕 위에 있고, 옆에 테미공원도 있고 참 좋네요.

조수희: 저는 아무래도 여행과 연결해서 생각하게 돼요. 이 공간을 여행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곳은 잘 몰랐거든요. 동네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중구에 살지 않는 사람들, 대흥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사는 동네를 보는 것도 여행이거든요.

옛 충청남도 관사촌
개인 소유가 되기엔 안타깝지 않나요?

테미도서관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와 왼편으로 1분 정도 걸으면, 왼편에 충청남도 관사촌으로 가는 골목이 나온다. 테미도서관을 오르는 골목보다 넓지만, 하늘이 보이는 골목의 정겨움은 여전하다.

김구슬레: 이렇게 좋은 길이 있는 줄 몰랐어요. 심은 나무도 멋있고. 집마다 개성이 있는 게 보기 좋네요. (충남도지사 공관을 가리키며) 이 집은 정말 좋아 보이는데요?

윤순상: 충남도지사 공관이에요. 대전시 문화재자료 제49호예요.

이용원: 안희정 지사가 살던 곳이에요. 이곳을 포함해서 관사촌을 충남도가 공개 매각한다지요? 60억 대라고 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돈 있으신 분 있나요?

▲ 관사촌

임기대: 마음이야 항상 이런 곳에 살고 싶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갈 것 같네요. 이런 곳은 대전시가 사야지, 공개매각 한다고 하니…. 대전시가 말로는 문화예술인을 위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무 정책도 없는 게 맞아요.

충청남도 관사촌은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고위 관료를 위해 지은 관사촌이다. 여러 관사 건물이 하나의 군을 이루고 있는 것이 철도국 관사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고 등록문화재 제101호로 지정했다.

충청남도 관사촌 시작점에 있는 도지사공관은 충남도청이 이전하기 전,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도지사공관은 1932년 목조와 조적조(적벽돌)로 지은 건물로, 현재 대전에 남아 있는 주거 건축 중 상태와 양식이 가장 좋다.

정원에는 소나무, 향나무, 삼나무 등 귀한 나무가 많다. 도지사공관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거처로 사용한 곳이고 UN군 참전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곳이다.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불평등 조약을 조인한 곳이기도 하다.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며 남은 충청남도 관사촌을 활용하겠다는 대전시의 계획이 백지화되었다. 대전시가 대전발전연구원에 맡겨 진행한 충청남도 관사촌 활용방안에 관한 정책 연구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대전시의 입장이 나오면 조율하겠다고 하던 충청남도는 충청남도 관사촌을 대전시가 인수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따라, 충청남도 관사촌을 공개 매각하기로 했다. 충청남도는 충청남도 관사촌을 감정 평가해, 일반경쟁 입찰할 예정이다. 충청남도 관사촌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64억 원 정도로 추정한다.

이용원: 시는 포인트별로 따로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걷고 있는 이유는 이 세 공간을 벨트화해서 한 번에 생각하기 위해서예요. 따지자면 오히려 관사촌이 레지던스 공간으로 잘 어울려요. 가정집이니 작가들이 머무르기도 좋지 않나요? 관사촌에서 레지던스를 하고, 테미도서관과 연결해, 도서관에서 전시하면 좋지 않나….

김구슬네: 오랜만에 이런 거리를 걸어요. 평소에 아파트만 있는 곳을 주로 걷거든요. 지금 이 거리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좋아요. 군산에 갔을 때, 일제 강점기에 지은 근대 건물들의 가치를 인정해서 개방해서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은 게 인상 깊었어요. 따로 어떤 용도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그 모습을 유지하면서 개방했어요. 지금 이 관사촌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곳을 개인이 산다면 안타까울 것 같아요.

옛 충남도청사
고유한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은?

▲ 충남도청

테미도서관과 충청남도 관사촌은 대흥동, 충남도청은 선화동에 있다. 충청남도 관사촌에서 충남도청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적한 충청남도 관사촌 골목을 벗어나 대로변을 걷다 보면 1932년 지은 충남도청사가 보인다.

충남도청사는 도청 소재지를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며 지은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임시 정부청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처음 지을 때는 2층 벽돌조 건물이었으나 1960년 무렵 넓은 창을 낸 모임지붕 형태로 3층 부분을 증축했다. 3층을 제외한 본관은 등록문화재 제18호다.

옛 충남도청사는 본관동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일반매각이 어렵다. 2012년 12월 강창희 의장이 도청이전특별법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으로, 충청남도는 대전시와 대부 계약을 체결했다. 2013년부터 2년간 대전시가 임대한다.

본관 1층은 전시실, 2층은 사무실을 계획 중이고, 시장 제2집무실과 회의실은 지금도 이용 중이다. 의회로 쓰던 건물, 신관, 후생관, 대강당에는 7월 개강을 목표로 시민대학을 계획한다. 카톨릭 문화회관에서 진행하던 연합교양대학도 7월 중 충남도청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계획한다.

▲ 충남도청

임기대: 테미도서관하고 충청남도 관사촌을 천천히 둘러보고 왔는데 한 시간이 안 걸렸네요.

이용원: 제가 예전에 홍대 프린지 페스티벌을 취재했을 때 보니, 서울은 한 섹터의 개념이 굉장히 넓더라고요. 우리 같으면 택시를 타고 다닐 만한 곳이 한 섹터였어요. 지금 우리가 둘러보고 있는 곳을 연결하는 걷기 좋은 길에 관한 고민이 필요해요. 있는 길을 활용 못 하고 계속 만들어내기 바빠요.

조수희: 다니다보면, 좋은 길이 많거든요. 그런 길을 활용 못하고, 개발하려 하니 업자에 사업만 주는 형태가 되는 것 같아요.

임기대: 저기 충남도청 걸린 현수막 좀 보세요. LED 거리 만든다고 원도심이 활성화되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으능정이 거리 가보면 굉장히 심란해요.

이용원: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오래된 건물 느낌이 나죠?

임기대: 일제 잔재라고 없애야 한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제 또 선거 시작하면 후보들 공약으로 도청 활용 방안이 나올 거예요. 개인적으로 도청사를 처음 기획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연합교양대학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지금 대학교에 교양 과목이 없어요. 지역 대학교들이 자체 개발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죠. 대학교 입장에서는 공간 제공하지, 인건비 절약되지 연합교양대학이 나쁠 게 없거든요. 그렇지만 학생들 시간이 그렇게 널널하지 않아요. 한 수업 들으러 나오면 그 날 다른 수업은 어떻게 하나요.

이용원: 대학생을 돈 쓸 사람으로밖에 안 본다는 뜻이죠. 이곳에 수업 들으러 와야 식당에서 밥이라도 사 먹는다는 거죠.

조수희: 도청 본관 나가는 문으로 보니까 대전역까지 쫙 보이네요. 충남도청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뚫린 길이 서대전네거리까지 나갔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일본인들이 기운를 꺾으려고 이곳에 충남도청을 지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임기대: 그랬을 수도 있고요. 이 대전 원도심이 서양 근대도시와 같은 모습이에요. 경제지역 옆에 행정기구가 있어요. 일본이 서양에서 배운 것을 적용한 거죠. 이곳은 근대 도시 현장으로서 의미가 있어요.

이용원: 본관뿐만 아니라 우체국, 의회, 체육회 건물도 예뻐요.

임기대: 저 앞에 짓는 교보문고 건물을 보세요. 혹시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 건물이 어떤지 아세요?

김구슬레: 글쎄요. 그냥 네모지고 큰 건물 아닌가요?

임기대: 보통 건물이란 게 크기만 다르고 다 비슷비슷해요. 하지만 충남도의회 건물은 대전에만 있는 건물이에요.

이용원: 테미도서관, 충청남도 관사촌, 충남도청을 천천히 둘러보니 딱 한 시간 반이 걸렸네요. 이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이 세 곳을 벨트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가까운 거리 세 곳을 대전시는 각각 따로따로 생각하는 게 안타깝네요.

조수희: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걸었던 길을 산책 코스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임기대: 한 시간 반 동안 알차게 둘러보고 갑니다.

테미도서관과 충청남도 관사촌, 충남도청 이 세 공간은 이제 그 이름 앞에 ‘옛’이라는 단어를 달게 되었다. 그리고 세 공간은 각기 다른 운명을 맞았다. 그 운명에 교집합이라는 것은 찾기 어려웠다. 이날 함께한 모두는 세 공간이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이 되기를, 서로 멀지 않은 세 공간이 어떤 식으로든 연계되기를 소망했다.
방담 산책을 함께할 사람을 모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세 공간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역사성, 공간성에 맞는 공간은 관심과 의지에서부터 나온다. 관심과 의지가 필요했고, 필요하다.

▲ 전체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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