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식물에서 찾은 항암제의 희망
[칼럼] 식물에서 찾은 항암제의 희망
  • 이성현 기자
  • 승인 2025.06.10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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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한방병원 동서암센터 조정효 교수
대전한방병원 조정효 교수
대전한방병원 조정효 교수

[충청뉴스 이성현 기자] 고대 의성 히포크라테스는 "자연은 최고의 의사다"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건강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한 말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들 속에는 놀라운 약리 성분들이 존재하고, 그중 일부는 암세포를 억제하는 항암 작용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생성하는 2차 대사산물이 항암제 개발의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다양한 질병 치료에 식물 유래 전통 약제를 사용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약 3,000종 이상의 식물이 항암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일부 식물은 암 치료의 보완 대체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항암제의 상당수가 식물 유래 물질이다. 미국 FDA에서 승인한 의약품의 약 40%는 천연물에서 유래하거나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것으로, 이 중 74%는 항암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빈크리스틴은 일일초(Catharanthus roseus)에서 추출된 알칼로이드 성분으로, 주로 소아 백혈병과 림프종 치료에 쓰인다. 또한, 탁솔(Paclitaxel)은 태평양주목(Pacific yew)에서 유래한 물질로, 유방암, 난소암, 폐암 등 다양한 암에 효과를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식물 유래 성분을 기반으로 한 신규 치료제 개발과 기존 항암제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예를 들어, 호모하링토닌(Homoharringtonine)은 중국 전통 약용수목 Cephalotaxus 속 식물에서 유래된 성분으로,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인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게 사용된다. 인제놀 메부테이트(Ingenol mebutate)는 Euphorbia 속 식물에서 유래되었으며, 피부암 전 단계인 광선각화증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았다. 강황의 노란색 성분인 커큐민(Curcumin)은 항산화 작용 외에도 암세포 증식 억제 및 면역 조절 효과를 지녀, 다양한 연구에서 항암 보조제로서의 가능성이 평가되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풍부한 베툴린산(Betulinic acid)은 특히 흑색종에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며, 다른 암종에 대해서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한, Tacca chantrieri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유래한 타칼로놀라이드(Taccalonolides)는 미세소관을 안정화시켜 세포 분열을 억제하며, 기존의 탁솔과는 다른 기전을 통해 탁솔 내성 암세포에도 효과적인 새로운 항암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아그리몰 B(Agrimol B)는 우리나라에서 ‘선학초’로 알려진 Agrimonia pilosa에서 추출된 성분으로, SIRT1 단백질을 활성화하고 다양한 신호 전달 경로를 조절함으로써 암세포 성장을 억제한다. 이 성분은 대장암, 간암 등에서 효과가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고, 향후 항암제로의 개발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호노키올(Honokiol)은 Magnolia 속 식물의 껍질에서 유래된 성분으로, 세포자멸사 유도와 항염증 및 항산화 작용을 통해 뇌종양, 백혈병, 전립선암 등 다양한 암에서 효과가 보고되고 있으며, 기존 항암제와의 병용 요법 가능성도 탐색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 의학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으며, 식물 유래 항암 성분들은 그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연이 주는 생명력과 과학의 정밀성이 만나면, 암 치료의 길은 더욱 넓고 안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모든 식물 유래 성분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으며, 적절한 용량과 정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하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접근이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식물 속에 치료의 열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의 생명력은 우리가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자연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그 지혜를 과학으로 연결하는 노력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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