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용 칼럼] 믿음의 말과 행동
[문민용 칼럼] 믿음의 말과 행동
  • 최형순 기자
  • 승인 2026.01.15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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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뉴스 최형순 기자] 미국 뉴욕에 헝가리에서 온 한 이민자 가족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무렵, 고향에 있는 친척들이 생각이 나서 그들이 필요할 만한 갖가지 생필품을 모아 보냈습니다. 통조림 캔, 초콜릿, 화장지, 붕대 등 여러 요긴한 물건들이었습니다.

문민용 기쁜소식 음성교회 목사
문민용 목사

얼마 후 헝가리에 있는 라슬로 삼촌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생필품 잘 썼단다. 너무 고맙다. 특별히 보내준 약이 너무 잘 듣더라. 관절염 때문에 지팡이 짚고 다니던 네 사촌 동생이 그거 먹고 벌써 다 나았고, 나와 여동생도 앓던 두통이 다 사라졌다. 미국 약은 정말 잘 듣는구나! 혹시 더 보낼 줄 수 있다면 보내다오!”

편지를 읽은 뉴욕 식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삼촌이 말한 약을 헝가리에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편지를 보내 약 이름이 뭔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답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Life Savers.”

‘Life Savers’는 약이 아니라, 구명튜브(Life saver)와 모양이 똑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지금도 미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사탕입니다.

그런데 헝가리에 있는 친척들은 그것이 사탕인 줄도 모르고 약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먹은 것뿐이었는데, 관절염과 두통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플라세보 효과입니다. 효과가 전혀 없는 위약을 진짜 약으로 믿고 섭취했을 때 환자의 병이 낫는 현상을 말합니다.

캐나다의 케이프 브레톤 섬에는 엄청나게 큰 탄광이 하나 있습니다. 이 탄광에서는 작업을 위해서 여러 마리의 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들을 한번 깊고 어두운 탄광 속으로 들여보내면 다시는 탄광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미 오랜 어두움에 적응되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말들은 바로 실명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탄광으로 들어간 말은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까지 계속 어두운 땅속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은 탄광 속에 빠져 어둠에 적응하는 순간, 우리의 생명도 끝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의 빛이 되시는 그 분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가을 한 철에만 농어낚시가 허용되는 호수에 아버지와 열 살배기 아들이 낚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농어잡이가 허용되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밤이 으슥할 무렵 드디어 아들의 낚싯대 끝이 둥그렇게 구부러지며 큼직한 놈이 한 마리 걸려들었습니다. 농어였습니다. 아버지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밤 10시 30분, 농어잡이는 내일부터 허용되었고 지금은 농어 이외의 고기만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호수엔 낚시꾼도 배도 없었습니다.

"얘야, 그 농어는 풀어주고 우리 다른 것을 잡도록 하자꾸나." 안돼요 아버지, 이렇게 큰 물고기를 잡은 건 처음이에요" 하지만 아버지의 단호한 결정에 아들은 농어를 놓아주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른 뒤 사업가가 된 아들은 정직하고 모범적인 경영자로 뽑힌 자리에서 열 살 때의 그 사건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진정한 정직'을 배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정의는 바른길입니다. 그러므로 정의에 입각해서 살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의 바른길을 따라 정의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불의는 굽은 길이요, 불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스스로 사람다워지기를 거부하고 파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바른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40년 전 링글린 브러더즈 서커스단이 뉴욕 공연을 할 때였습니다. 공연 중 갑자기 정전됐습니다. 1분 간이었지만 관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무대에서는 조련사가 호랑이 네 마리의 재주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철창 속이니까 관중에게는 위험이 없었으나 캄캄한 데서 조련사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하고 캄캄한데 무대에서는 조련사의 채찍 소리와 호랑이의 동작을 지시하는 명령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불빛이 다시 켜지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뒤에 기자회견이 열리자 조련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들은 나를 잘 봅니다.

내가 호랑이를 못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 속에 있듯이 행동해야 합니다." 조련사가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를 여전히 제압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의 사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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